▲ 충북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소나무 숲은 금강 상류와 언저리가 맞닿아 있어 토양에 수분이 많아 나무들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28만 4290㎡의 너른 공간에 빼곡한 소나무들은 특유의 서늘함으로 매년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들을 불러들인다. 지난 1988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소나무 숲은 이제 마을 숲을 넘어 국민 숲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서둘러 봄의 휘장을 찢는 도심의 가로수들을 헤쳐 4번 국도를 따라 내륙으로 내습하면, 아직 덜 피어났거나 혹은 피난 온 벚꽃들이 뒤섞여 마지막 봄놀이 중인 충북의 최남단 영동이다. 봄꽃들 속에서 설국이 그립듯 신록 속에선 봄꽃들이 그립고, 단풍 속에서 신록이 그립듯 설국 속에선 단풍이 그립다. 지나간 그리운 것들은 질리지 않고 그리운 법인데, 최근 봄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편입된 영동엔 그리운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영동읍에서 무주방면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10㎞가량 파고들면 마포3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우측으로 휘돌아 3㎞가량 들어가면 솔바람 그늘 짙은 송호국민관광지다. '국민'이라는 접두어로 전국 대처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거대한 소나무 숲엔 봄비에 덜 마른 솔잎 향기가 아슴아슴하다.

   
 
1. 마을 숲에서 국민 숲으로

충북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소나무 숲의 수세(樹勢)는 충청권에선 비슷한 규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대하다. 편평한 모래밭엔 100여년의 수령을 헤아리는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지난 1988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소나무 숲은 이 같은 수세로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지역민의 살림살이를 돕고 있다. 숲의 서늘함은 기온에 비례해 깊어지기 마련이어서, 매년 여름이면 소나무 그늘 아래로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숲의 언저리엔 금강 상류의 맑고 잔잔한 물줄기가 닿아 있어 서늘함에 깊이를 더한다. 28만 4290㎡의 너른 공간에 야영장·주차장·취사장·산책로·물놀이장 등 부대시설까지 갖춘 소나무 숲은 이제 숲보다 관광지로써의 면모가 더 앞서는 공간이다.

숲의 역사는 마을 숲들이 대개 그러하듯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중종(中宗) 35년(1540) 무과에 급제, 명종(明宗) 때 황해도 연안부사(延安府使)를 지낸 박응종(朴應宗)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낙향해 해송 종자를 뿌려 송전(松田)을 가꾼 게 숲의 기원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강이 바라보이는 바위 언덕에 만취당(晩翠堂)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마을의 자제들에게 경서를 가르치며 여생을 맑게 살았다. 당시 송전에 뿌려졌다던 해송 종자의 맥은 단절됐지만 후손들의 숲을 보듬는 손길만큼은 끊임없이 이어져 수세는 나날이 번창해 지금에 이르렀다. 10여m 이상 우뚝 솟은 수많은 소나무들은 저마다 나이테로 새로운 시간의 눈금을 새겨나가며 또 다른 수백 년을 바라보고 있다. 숲속의 침엽수도 강변에 기댄 활엽수도, 나이 든 나무도 나이 어린 나무도, 그네들이 새봄에 뽑아내는 이파리들은 모두 다 젊고 풋풋하다. 늙음과 젊음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나무 앞에서 수령을 수치화시켜 가늠하는 일이란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수백 년 후에도 송호리 소나무 숲은 늙어도 젊은 숲일 터이다. 시계가 고장 나도 시간은 멈추지 않듯, 사람들의 기억만 멀어져 흐릿해질 뿐이다.

표토는 모래로 서걱거리지만 강과 가까운 터라 심토는 깊고 촉촉해 전반적으로 숲의 소나무들의 생육 상태는 좋은 편이다. 소나무 숲 끝에선 리기다소나무가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25년가량이면 생장을 멈추는 수종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토질에 힘입어 지금도 생장 중인 나무들이 많다. 그러나 거스를 수 있는 천수도 한계에 달했는지 리기다소나무들은 줄기 곳곳에서 검불처럼 앙상한 잠아(潛芽)를 터트리고 있었다. 리기다소나무들이 바로 옆 소나무 숲과 더불어 깊은 날숨을 토해낼 날도 그리 많이 남진 않은 듯하다. 머지않아 이들이 바람에 생을 돌려주는 날, 바로 옆 건강한 소나무 숲의 종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터이다.

 

   
 

2. 소나무 숲의 중심에서 봄을 외치다

양산면의 경승(景勝) 여덟 곳을 양산팔경(陽山八景)이라 일컫는데, 천태산 동쪽 자락에 깃든 천년고찰 영국사(寧國寺), 낙조가 아름답다는 강 남쪽의 비봉산(飛鳳山·481m), 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선대(降仙臺), 용바위(龍岩), 봉황대(鳳凰臺), 함벽정(涵碧亭), 여의정(如意亭), 자풍서당(資風書堂)이 그것이다.

양산팔경의 상당수는 소나무 숲 주변에 집중돼있다. 숲에서 강으로 시선을 옮기면 곧바로 눈에 드는 강선대는 강물과 바위와 소나무가 삼합(三合)으로 어우러져 양산팔경 중에서도 첫손 꼽히는 경승이다. 선녀가 목욕을 하기 위해 내려오던 곳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엔 아담한 정자 하나가 20여 그루의 크고 작은 소나무에 감싸여 있어 선경(仙境)을 자아낸다. 정자위에서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일도 소나무 숲에서 강선대를 바라보는 일만큼이나 호사다. 강선대에서 멀지 않은 곳엔 선녀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다 승천하지 못하고 물속으로 처박혔다는 용이 바위로 남아 더 이상 강림하지 않는 선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숲에서 강을 바라보면 이 모든 풍경들이 은빛으로 쪼개지는 물비늘의 광채 속에서 수묵담채화를 닮아간다. 숲속의 작은 바위 언덕 만취당 옛 자리엔 지난 1935년 후손들이 박응종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여의정(如意亭)이 오래된 버드나무, 느티나무와 더불어 한유롭다. 숲의 동쪽 끝 강 건너편엔 함벽정(涵碧亭)이 옛 시인 묵객들의 음풍농월을 갈무리한 채 찔레꽃마냥 절벽 숲속에 달라붙어있다. 소나무 숲에만 와도 양산팔경의 절반이 확보되는 셈이다. 금강 상류의 고요한 물줄기와 보는 이를 압도하지 않는 편안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소나무 숲 주변의 풍광은 심미안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아름답다.

젖었던 나무들이 정오의 햇살 속에서 빛났다. 나무와 나무 사이 헐거운 자리마다 상춘객들의 텐트가 들썩인다. 배부른 아이들은 모여서 뛰놀다 지치면 제풀에 흩어져 나무 그늘 아래로 향했다. 봄볕이 느슨한 나뭇가지에 부딪혀 쪼개진 숲의 바닥엔 어김없이 속살 같이 여린 풀들이 돋아나있었다. 숲 언저리 햇살 쏟아지는 자리엔 마른 풀섶을 비집고 솟아오른 하얀 냉이꽃과 노란 꽃다지 풀 비린내로 코끝이 알싸하다. 벚나무 꽃구름 사그라지는 자리마다 라일락 향기가 짙어져 간다. 송호리 소나무 숲은 지금 봄의 한가운데에 있다.

영동=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사진=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