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당산을 덮은 소나무 숲에는 소나무 외에도 다양한 수종들이 뿌리내려 자라고 있다. 단일 수종으로 정돈돼 체계적인 관리의 흔적이 느껴지는 여타 마을 숲과는 달리 다소 산만한 인상을 주나, 그 산만함이 외려 정겹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충남 홍성군 결성면은 윤곽으로만 남은 옛 고을이다. 한때 옛 홍주와 더불어 동등한 군세(郡勢)를 자랑했던 결성면은 1914년 합군(合郡) 이후 홍성의 크고 작은 면들 중 하나로 편입돼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면 전체 인구도 3000여 명으로 쪼그라들어 옛 군세가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오래된 것들이 아직도 곳곳에 많이 남아있어 그 흔적을 더듬긴 어렵지 않다.

복작거리지 않아 편안한 거리를 지나 읍내리 좌우촌 마을에 닿으면 조선왕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오래된 동헌(東軒)과 만난다. 더 이상 곤장 치는 소리도 추문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옛 동헌은 오래된 것 그 자체의 위엄으로 옷매무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동헌을 지나 이어지는 은행나무 여린 잎 돋는 오르막길 끝에선, 올해로 개교 한 세기를 맞는 결성초등학교의 아담한 2층 건물이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교정답게 안팎의 풍경 또한 오래된 것들 일색인데, 한눈에도 족히 수백 년의 수령을 짐작케 하는 늙은 벚나무가 교문 옆에서 어린 꽃들로 환하게 빛났다. 교목(校木)인 거대한 은행나무 또한 한 오백년의 수령(樹齡)을 헤아린다.

바로 옆 석당산(石堂山·146m)으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르막길 입구에선 봄꽃과 새잎이 뒤섞여 계절의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면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소나무들의 향기가 푸르고 싱싱하다.

봄의 숲은 시작하는 듯 끝나버리는 첫사랑처럼 극적이다. 지난 계절의 마른 이파리가 흙으로 되돌아가기도 전에 온갖 색으로 물들었던 숲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연둣빛 새잎으로 채워지는 사태는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이때만큼은 강건했던 솔잎들도 감춰뒀던 여린 빛깔을 수줍게 내보이며 봄의 자지러짐에 잠시나마 동참한다.
 

   
 

좌우촌 마을 소나무 숲의 봄은 지금이 한창이다. 숲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은 여전히 꽃구름으로 몽롱했다. 동행했던 문화해설사 이윤희 씨는 "홍성 지역은 겨울엔 난류의 영향을 받아 물이 얼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데, 봄엔 반대로 추워서 개화가 늦다"며 "다른 곳보다 늦게까지 벚꽃을 즐길 수 있어 봄을 한발 놓친 상춘객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홍성을 자랑했다.

석당산을 덮은 소나무 숲에는 소나무 외에도 다양한 수종들이 뿌리내려 자라고 있다. 단일 수종으로 정돈돼 체계적인 관리의 흔적이 느껴지는 여타 마을 숲과는 달리 다소 산만한 인상을 주지만, 그 산만함이 외려 정겹다. 겨우내 묵은 때를 뺀 소나무는 새잎을 돋아내기 시작한 활엽수와 더불어 풋내를 뿜어냈다. 임도 주변 곳곳엔 운동기구와 벤치 등 편의시설이 설치돼있다. 석당산은 빈틈없어 멀어 보이는 명산과 달리 생활을 밀쳐내지 않는 자리에서 가깝고 친밀한 공간이다. 좌우촌 마을 소나무 숲 또한 구태여 먼 곳의 사람들을 부르려 애쓰는 숲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만으로 자족하는 아기자기한 숲이다. 그런 숲을 가까이 두고 사는 좌우촌 마을사람들의 삶은 참으로 복되다.

홍성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스쳐갔던 산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침부터 회색 빛 구름떼가 산자락을 휘감았다. 파스텔 톤으로 뿌옇게 번져나가던 흐린 날의 침엽수림은 느슨해진 햇살 속에서 관능적으로 빛났다. 지난 계절 가볍고 소슬했던 숲은 연둣빛 물결로 출렁이며 여름을 닮아가고 있었다. 이는 좌우촌 마을 숲의 상황도 매한가지여서 냉이꽃 저문 자리에선 벌써부터 여름 꽃 애기똥풀이 노란 잎을 칭얼거린다. 단풍나무도 어린잎을 형광색으로 반짝였다. 함께 나무들을 바라보던 이 씨는 "연둣빛도 만 가지 빛깔이 있음을 이맘때 산과 숲을 보며 실감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 말이 옳다.
 

   
▲ 산 정상에 남은 옛 산성의 흔적들.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해온 오래된 숲임에도 불구하고 좌우촌 소나무 숲엔 의외로 노송(老松)이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밑동 위 오래된 생채기를 기점으로 뒤틀려 자라는 나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 씨는 "태평양 전쟁 말기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이 대체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라며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노송 뿌리까지 캐내 기름을 짜냈다"고 말했다. 일제의 수탈의 흔적은 이 작은 마을까지도 뻗어있었다. 송진을 빼앗긴 소나무는 기갈 속에서 기약 없는 해방의 날을 기다렸을 터이다. 나이테를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도 격하게 뒤틀린 둥치가 질곡의 세월을 말해준다. 한 갑자(甲子)를 넘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아픈 역사는 나무줄기 위에서 상흔으로 깊고 선명하다.

산에는 뱃사람들의 무사귀환과 풍년을 기원했던 신당터가 남아있다. 마을의 흥망과 더불어 자연히 사라져간 신당이 산의 본래 이름(금왕산)을 앞선 것으로 보아, 당제가 상당한 규모로 치러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사가 잔잔한 임도는 나이든 동네 주민들의 단골 산책로다. 정상을 밟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론 천수만과 안면도, 남쪽으론 천북면, 동쪽으론 은하면·지기산·오서산, 북쪽으론 청룡산과 너른 들녘이 사방으로 눈에 닿는다. 잡목들만 솎아낸다면 시야에 거슬리는 것은 적고, 목측이 미치는 곳은 넓어 군사적 요충지로 제격이었을 터이다. 석당산 정상부에는 700m 둘레의 통일신라시대 토축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산성이 이 낮은 봉우리에 자리 잡았었던 이유를 이해할만 하다. 조선 문종 때 축조된 결성읍성 또한 산의 북쪽 기슭을 에워싸고 있는데, 그중 일부분이 토축산성과 포개진다. 산 아래의 동헌도 초기엔 산성 정상에 위치했었을 정도로 석당산은 서해관문의 요지였다. 산세는 비록 해발 고도로 서열화 되는 내륙의 산들의 그것과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 내용물까지 초라하진 않다. 해발고도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법이다. 지난해 가풀막졌던 태풍 곤파스에 꺾인 나무들의 잔해, 제방에 막혀 더 이상 물이 드나들지 못해 늪지화 된 옛 금곡천 지류가 안타까운 풍경일 뿐이다.

등산을 빙자한 산책을 마치고 교정으로 들어오면, 아담한 건물 앞 화단에 연분홍 색 물감을 뿌린 듯 꽃잔디가 환하다. 꽃잔디를 쓰다듬은 바람은 결마다 향기를 실어 교정에 흩뿌렸다. 늙은 벚나무가 마지막 꽃비를 예비하고 있었다. 이 씨는 "봄놀이 후에 마시는 결성막걸리의 맛은 최고"라고 귀띔했다. 술 익는 마을은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꽃잔디 향기가 술처럼 달다.

홍성=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 옛 결성현 동헌 관아.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