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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추천 앨범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7. 원더걸스 ‘리부트’ 外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8. 12.

원더걸스가 퍼포머라도 좋다.

솔직히 나는 원더걸스의 연주력을 기대하진 않았다.

대신 좋은 곡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킴과 동시에 확실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아이돌이 누가 있었나?

어쩌면 원더걸스가 이번 앨범을 통해 아이돌이 아티스트로 연착륙하는 길 하나를 새롭게 뚫은 게 아닌가 싶다.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7. 원더걸스 ‘리부트’ 外

[HOOC=정진영 기자] ▶ 원더걸스 정규 3집 ‘리부트(Reboot)’= 매일매일 수백 개의 보도자료가 기자의 이메일 계정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루라도 보도자료를 정리하지 않으면 계정이 꽉 차 더 이상 새로운 보도자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수많은 보도자료들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가수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보도자료에나 상투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있거든요. 바로 ‘변신’입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변신’했다고 주장하는 가수들 중에 실제로 가시적인 변신을 보여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뀐 무대 의상이나 과감한 노출을 변신이라고 주장하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걸그룹 원더걸스의 밴드 변신은 아이돌을 넘어 가요계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변신 중 하나로 꼽을만합니다. 밴드가 시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는 한국의 음악시장에서,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거물급 아이돌이 밴드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변신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거두절미하고 원더걸스의 변신은 꽤 성공적입니다. 이유를 요약하자면 그동안 원더걸스가 추구해 온 복고 콘셉트에 충실하면서도 탄탄한 음악이 앨범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익숙함에 어색하지 않게 새로움을 더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려는 야심이 엿보입니다.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장르인 프리스타일(Freestyle)을 전면에 내세운 타이틀곡 ‘아이 필 유(I Feel You)’는 원더걸스의 영리함을 엿볼 수 있는 곡입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원더걸스는 밴드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80년대로 시계를 되돌리는 간결하면서도 탄력적인 신스 사운드와 디스코 리듬 및 멜로디는 그동안 원더걸스가 선보인 복고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원더걸스의 변신이 파격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또한 뉴웨이브 사운드에 충실한 ‘베이비 돈트 플레이(Baby Don’t Play)‘, 80년대 신스팝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리와인드(Rewind)’,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가 매력적인 ‘없어(Gone)’ 등 원더걸스가 재현하는 복고에는 일종의 격이 있습니다. 그만큼 프로듀싱이 의도에 맞게 잘 이뤄졌다고 볼 수 있겠죠. 

아쉽게도 멤버들은 이번 앨범의 연주 녹음에 참여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고 있죠. 최근 원더걸스가 쇼케이스에서 보여줬던 연주력 역시 연습을 많이 한 ‘스쿨밴드’ 수준이었습니다. 온전한 밴드로 보기엔 분명히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원더걸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멤버들의 고른 창작 참여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타이틀곡 ‘아이 필 유(I Feel You)’를 제외한 앨범의 모든 수록곡에 작사ㆍ작곡ㆍ편곡으로 참여했죠. 편곡에 참여했다는 것은 자신의 전공 악기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곡들의 만듦새 또한 기복 없이 고르고 대부분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더걸스의 이 같은 변신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 진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변신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다른 걸그룹들이 변신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 날이 오면 원더걸스는 한국 가요계의 역사에 아이돌이 아티스트로 연착륙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겁니다.




※ 살짝 추천 앨범

▶ 포니(Pony) ‘아이 돈트 원트 투 오픈 더 윈도우 투 디 아웃사이드 월드(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로파이(Lo-fi)의 질감에 실린 모호함과 몽환으로 가득 찬 사이키델릭 사운드. 과거의 자유분방하고 거친 사운드를 들려주던 포니를 생각하고 듣는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회화적인 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소리의 풍경이 압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 갤럭시 익스프레스 정규 4집 ‘워킹 온 엠프티(Walking on Empty)’= 열정적인 로큰롤을 들려주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4분 쉼표. 우여곡절이 깊고 길었던 만큼 더욱 강렬한 사운드로 무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유를 찾는 한 방을 보여줬다. 그만큼 더 진솔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음악이 온순해졌다고 열정까지 식은 것은 아니다.

▶ 벤케노비 정규 2집 ‘위민 오브 크렌쇼(Women Of Crenshaw)’=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을 이룬 간결한 연주 속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인 질감의 매력적인 포크ㆍ팝ㆍ컨트리. 편안하게 귀에 다가오면서도 정처 없이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가 묘한 느낌을 준다.

▶ 이베뜨 정규 1집 ‘간다’= 소녀의 순수함과 숙녀의 원숙함을 유치하지 않게 오가는 웰메이드 팝. 여백이 많은 어쿠스틱 사운드와 과하지 않게 배경으로 스며드는 현악 편곡이 앨범에 우아함을 부여한다. 보컬이 조금만 덜 예뻤으면 더 좋을 뻔했다.

▶ 이미쉘 미니앨범 ‘아이 캔 싱(I Can Sing)’= 짙은 감성과 깊이 있는 음색을 가진 탁월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가 들리지 않는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평균 이상으로 들리는 이유는 전적으로 이미쉘의 보컬 역량 덕분이다. 

▶ 호플레이(HoPLAY) 정규 1집 ‘화이트(WHITE)’= 투박하지만 잘 끓여낸 된장국처럼 맛깔 나는 음악과 가사들. 소소한 일상을 가사로 풀어내고 이를 은근히 귀 기울이게 만드는 담담함이 정겹고 반갑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