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사동 마을 숲은 시야가 먼 곳까지 트이는 너른 들판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을 끌어당긴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들의 수령(樹齡)은 250~300년을 헤아리는데, 숲과 어우러진 마을의 정경은 누가 봐도 넉넉하고 웅숭깊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한 지역을 주차간산(走車看山)하고도 다녀온 적 있다고 말하는 일은 꽤나 겸연쩍다. 다녀오긴 했는데 다녀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애매함이 겸연쩍음의 이유일진대, 대개 주차간산한 풍경은 쉽게 휘발되는 기억에 속한다.
때로는 여기서 주차간산한 풍경이 저기서 주차간산한 풍경과 비벼져 빈약한 기억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차간산한 풍경은 "주차간산했을 따름이다"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게 옳을 터이다. 그것만이 다녀오긴 했는데 다녀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애매함을 극복하고 언젠가 당당하게 자동차에서 내려 풍경을 주워 담을 수 있는 길이다.


취재차 몰고 간 오래된 승용차가 고속도로 보은 나들목을 벗어나자마자 말썽을 부렸다. 조수석 뒷바퀴가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원인은 브레이크라이닝 파손이었다.
승용차는 절름발이로 긴급대피하며 요금정산소에서 갓길까지 10여m가량 스키드 마크를 그렸다. 고속도로 주행 중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20여분 뒤 견인차가 도착했다. 견인차는 고장 난 승용차를 짐칸에 통째로 실었다. 고장 난 승용차는 기자들을 실었다. 그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멋쩍지만 즐거웠다.

19번 국도를 달리던 견인차는 금굴교차로에서 보은대로로 꺾었다. 바깥풍경을 주차간산하던 기자들은 도로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늘어선 소나무들이 우리가 찾는 숲의 일부임을 직감했다. 나무 뒤편으로 마을의 윤곽이 보였다. 그러나 고장 난 승용차를 실은 견인차를 멈춰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견인차는 마을 숲에서 1.3㎞가량 떨어진 정비소에서 멈췄다. 기자들은 고장 난 승용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왔던 길을 거슬러 숲으로 향했다. 목적지를 상하행으로 겨누기만 하는 국도 위에서 주차간산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느리게 걷자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데크로드는 나무들을 따라 200m가량 조성돼 있는데 가까이서 나무들을 들여다보기 쉽게 만들어준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충북 보은군 보은읍 금굴리는 보은읍 남쪽 지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금굴리는 고려 때 금을 파내던 곳이라 해 '쇠푸니' 혹은 '금곡(金谷)'으로 불렸다고 전해지는데, '금굴'이라는 현재의 마을 이름은 옛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굴리에는 현재 쇠푸니마을과 더불어 구랭이마을, 새터, 은사동 등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한 4개의 자연부락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그중 은사동(隱士洞)은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소나무 숲의 아름다움 때문에 최근 들어 사진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자연부락이다.

은사동 마을 숲은 시야가 먼 곳까지 트이는 너른 들판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주차간산하면서도 자연스레 눈길을 끌어당긴다. 보은군의 젖줄 보청천이 초록으로 출렁이는 들판 앞을 느리게 가로지르며 물비늘을 반짝인다. 숲과 어우러진 마을의 정경은 누가 봐도 넉넉하고 웅숭깊다.

사진작가들이 철마다 찾아와 렌즈를 들이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더불어 정의를 다툴 수 없는 참담한 시대를 살았던 옛 선비들이 왜 이곳으로 숨어들어 정자에 모여 앉아 소일했는지 이해할만하다.

'금굴1리 마을 유래비'에 따르면 은사동의 입향조(入鄕祖)는 300년 전 순흥안씨(順興安氏)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들의 수령(樹齡) 또한 250~300년을 헤아린다. 숲이 마을의 형성과 동시에 조성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은사동은 마을 앞에 펼쳐진 너른 들판 때문에 '은사뜰'로도 불리는데, 숲은 들판에서 마을로 몰려드는 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수구막이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숲을 따라 전답으로 나뉘어 수로를 형성하는데, 소나무는 수로의 둑을 막아주는 역할도 겸한다. 마을입장에선 이래저래 고마운 숲이어서 주민들은 매년 정월이면 숲에서 제를 지낸다.

그간 사유지에 속해 있어 원형보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숲은 지난 2009년 8월 13일 보호림으로 지정됐다. 이후 숲을 이루는 소나무 87그루와 버드나무 5그루는 군(郡)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군은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자 나무 주변 사유지를 매입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 고사목 등으로 헐거워진 자리엔 우량 소나무들이 보식(補植)됐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데크로드도 설치됐다. 데크로드는 나무들을 따라 200m가량 뱀처럼 구불거리며 나무와 농경지 사이를 절묘하게 내외한다.

또한 데크로드는 사람과 나무 사이의 거리를 좁혀줌과 동시에 나무뿌리에 작용하는 답압(踏壓)을 차단하고 농경지의 훼손을 막으며 상생을 도모하고 있었다. 덕분에 숲의 나무들은 양호한 생육 상태를 보이고 있다. 참으로 기특한 아이디어다.

보호림 지정과 더불어 조성된 생태 연못에선 철 따라 옥잠화, 꽃창포 등 수생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뿌리로 물을 정화시킨다. 사람들은 은둔했던 옛 선비들 마냥 못 옆 정자에 머무르며 꽃들을 바라본다. 지금 못은 부처꽃 붉은 빛으로 화사하다.

정자 위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숲에서 한 발짝 비껴 서서 홀로 새하얀 줄기를 반짝였다. 햇살 비집고 들어올 틈새 없이 빽빽하게 돋아난 넓은 이파리들이 수많은 소나무 사이에서 이채로웠다. 채송화가 여름 햇살에 맞서 붉은 꽃봉오리를 맹렬하게 솟아냈다. 원추리 꽃잎도 맑은 하늘아래서 더욱 붉다. 시간 감각을 잃은 달맞이꽃이 때 이른 꽃잎을 활짝 열어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느리게 왔던 길을 되짚으며 자동차가 주저 앉아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지인만 금을 만지는 꼴이 분해서 이름 붙여진 분터골, 죽은 아이들을 장사지냈다는 가장골, 옛적에 여우가 넘나들었다는 여우골, 용수에 술이 고이는 것 마냥 늘 습하고 질다는 용수골, 장끼골, 뒷골, 안골, 서리골… 길 따라 늘어선 금굴리 골짜기엔 사연도 많다. 익을 대로 익어 제 무게 못 이긴 살구 열매가 갓길에 흩어지고 으깨져 바람에 불려가고 있었다. 오후 햇살 깔리는 숲의 언저리에서 바라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향기롭다.

보은=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