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俗離山)은 이제 세상(俗)과 떨어진(離) 산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속세와 친밀한 산이다. 본디 '속리'란 사람들과 멀어짐으로써 얻어진 이름일 터인데, 휴가철 속리산은 단 하루라도 '속리'하고픈 사람들로 들끓는다. '속리'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모여짐으로써 '속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산행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숙소와 맛집이 즐비한 속리산 들머리에서 온전히 '속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단 하루라도 '속리'하고픈 외지인들의 욕망을 막을 명분도 없다. 그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 속리산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밥줄도 끊긴다. 이 지역의 한해 미곡 소출량으로 주민들의 입을 모두 채우기는 역부족이다. 밥은 결국 '속리'보다 신성하다.

 

   
▲ 구병산은 그간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지난 1990년대 충청북도가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의 '충북 알프스' 코스를 개발한 이후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긴 했지만, 구병산은 여전히 속리산보다 더 '속리'하다. 구병산 중턱에 깃든 마을 구병리 또한 그러하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고속도로가 가지를 쳐 산맥을 동강내 시·군 단위지역을 종횡하고, 국도와 지방도가 모세혈관처럼 산하를 휘돌아 동·리 단위지역을 잇는 작금에 이르러 '속리'란 단어는 무의미해졌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속리산 그림자에 가려진 여러 봉우리들은 속리산보다 더 '속리'하는 모습을 보여줘 종종 사람들을 놀래게 만들곤 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그중 속리산 남쪽 국도변에 자리 잡은 구병산은 '속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간직한 곳이라 할만하다.

구병산(876m)은 속리산(1058m), 금적산(652m)과 더불어 보은의 삼산(三山)이다. 그중 속리산은 지아비산(夫山), 구병산은 지어미산(婦山), 금적산은 아들산(子山)으로 불린다. 아홉 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구봉산으로도 불리는 구병산은 그간 지아비산의 명성에 가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지난 1990년대 충청북도가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의 '충북 알프스' 코스를 개발한 이후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긴 했지만, 구병산은 여전히 속리산보다 더 '속리'하다. 구병산 중턱에 깃든 마을 구병리 또한 그러하다.

속리산국립공원 구역 밑자락 삼가저수지를 끼고 좁은 오르막을 따라 2㎞가량 땀을 빼면, 군더더기 없이 우뚝 솟아오른 소나무 줄기들이 외부인을 맞는다. 마을 입구에 군락을 이룬 노송들은 마을을 더욱더 '속리'스러워 보이게 만든다. 구병리의 마을 숲, 송림원이다. 숲엔 상수리나무도 몇 그루 뒤섞여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점종(優占種)은 소나무다.  

   
 

약 250여년 수령(樹齡)의 소나무 80여 그루로 형성된 자그마한 숲이지만 심심산중에 스며든 숲이다 보니 그리 작게 느껴지진 않는다. 외려 산세와 포개져 깊고 그윽한 멋을 풍긴다. 산자락에 깃든 마을 숲이지만 평지의 마을 숲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수구막이 숲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서서 숲에서 벗어나면 소박한 모양새의 집들이 옹기종기 내려앉은 그림 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숲에서 숲보다 외부인들에게 더 유명한 것은 이곳의 특산주인 송로주(충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다. '동의보감'은 송로주가 관절신경통에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로주를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는 속설도 전해지는데, 과연 그 속설이 옳은지 구병리에선 희수(喜壽), 미수(米壽)를 넘긴 촌로들을 마주치기 어렵지 않다. 물론 구병산의 깨끗한 물과 공기야말로 가장 큰 무병장수의 비결일 테지만 말이다.

송로주를 빚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누룩과 멥쌀가루를 1대1로 섞어 섭씨 30도에서 사흘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여기에 구병산 소나무 옹이를 얇게 썰어 넣고, 복령(茯笭·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의 일종)을 알밤 크기로 깎아 엿기름과 뒤섞는다.

이를 2주간 발효하면 송절주가 빚어지는데, 이 송절주를 증류하면 송로주가 고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송로주의 알코올 도수는 48도로 민속주 중에서도 최고의 독주에 속한다. 그러나 잘 빚어진 증류주들이 그러하듯 그 맛이 잡스럽지 않고 향기로우며 깔끔하다. 애주가들은 솔바람 드는 그늘 아래 술 익는 초당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보은은 예부터 정감록(鄭鑑錄)에 전해지는 십승지지(十勝之地·전쟁과 굶주림을 피할 수 있다는 길지) 중 하나다. 19세기 중엽이후 풍수도참 말고는 기댈 곳 없던 민초들이 개화와 외세 침략의 소용돌이를 피해 구병산 중턱으로 숨어들었다. 한국 전쟁 당시엔 이북서 피난 온 사람들도 마을로 파고들었다. 마을에선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집된 사람이 없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상한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국토 구석구석이 유린당하는 동안에도 이곳만큼은 오롯이 평안을 유지했던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병리에선 소폭이나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도회지의 팍팍한 삶을 정리하고 마을로 들어와 안토(安土)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다.

마을 꼭대기에서 아래를 굽어본다. 마을은 소의 자궁을 닮은 지형 때문에 우복동(牛腹洞)이라고도 불린단다. 좌청룡 우백호 따위의 풍수적인 분석이나 십승지지라는 후광이 없어도 한눈에 마을이 명당자리를 꿰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낮 도참(圖讖)에 실려 떠도는 이야기라고해서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다. 매년 2월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구병산 산신에게 제를 올린다. 

   
▲ 노송 줄기마다 담쟁이 덩굴이 앙증맞고, 루드베키아 꽃이 숲 곳곳에서 노란 꽃잎으로 환하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지난 2001년엔 행정자치부가 마을을 '아름마을'로 지정했다. 이후 3년 동안 13억 원을 지원받아 생태마을로 탈바꿈한 마을은 숨겨진 휴양지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 부쳐 먹을 땅이 적어 생계가 만만치 않았던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활기의 절정은 가을이다.

해마다 9월이면 메밀꽃이 눈송이처럼 화르르 일어나 마을 뒷산을 하얗게 덮는다. 축제가 열린다. 메밀꽃은 사발 속에도 피고 주전자 속에도 핀다. 꽃이 피면 마을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메밀전과 막걸리도 곰살가운 인심처럼 넘쳐난다.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마을에서 흐드러진 메밀꽃을 안주 삼아 취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한낮 더위를 피해 숨어들었던 산바람과 골바람이 길 따라 내려온다. 구병산 꼭대기 풍혈(風穴) 속에서 몸을 식히기라도 했는지 바람은 열기에 지친 살갗을 이물감으로 간질인다. 산이 어스름을 하늘가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며칠 새 젖은 나무들이 구름 걷힌 오후 햇살 받아 비린 안개 속에서 빛났다. 여름의 한가운데다.

보은=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