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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콘셉트의 미래 ‘밴드’…일본 보면 보인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1. 20.

기사 제목은 거창한데 사실 거창한 기사는 아니다. 그냥 인터뷰이다.


이렇게 말하면 고루한 놈으로 취급 받을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밴드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라이브를 잘해야 하고, 앨범의 녹음을 직접 해결해야 하고, 송라이팅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발굴에 게으른지 몰라도, 이 조건에 충족하는 걸밴드를 나는 아직 국내에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가챠릭 스핀은 그런 모든 것이 가능한 밴드였다.

말그대로 밴드가 밴드답게 활동하고 라이브를 펼치고 있었다.

밴드 콘셉트로 차별화를 원한다면 우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챠릭 스핀을 보며 해봤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11월 23일자 29면 톱에도 실린다.



걸그룹 콘셉트의 미래 ‘밴드’…일본 보면 보인다

[HOOC=정진영 기자] 소나무, 루루즈, 여자친구, 러버소울, 씨엘씨, 디아크, 오마이걸, 큐피트, 어썸베이비, 아샤, 플레이백……. 이들은 모두 올해 데뷔한 신인 걸그룹들이다. 매년 수십여 팀의 걸그룹들이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지만, 그중 시장에 안착하는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대중음악시장에서 걸그룹은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이다. 수많은 걸그룹 사이에서 신인이 조금이라도 주목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노출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밴드 콘셉트’이다. FT아일랜드, 씨엔블루 등 보이그룹은 ‘밴드 콘셉트’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아이돌이다. 그러나 걸그룹 중에선 아직까지 ‘밴드 콘셉트’로 성공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에이오에이(AOA)가 데뷔 초 밴드 유닛을 댄스 유닛과 동시에 내세웠으나 시장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최근에는 원더걸스가 ‘밴드 콘셉트’를 내세우며 컴백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직접 악기를 연주해 녹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 출신 걸밴드 가챠릭 스핀(Gacharic Spin)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디딤홀에서 내한공연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마이(댄서 1호), 오레오(키보드ㆍ보컬), 토모조(기타), 하나(드럼ㆍ보컬), 코가(베이스), 넨네(댄서 3호).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디딤홀에서 일본의 걸밴드 가차릭 스핀(Gacharic Spin)이 내한공연을 벌였다. 비록 소규모의 클럽에서 열린 공연이었지만 그 열기만큼은 대단했다. 가챠릭 스핀은 귀엽고 화려한 외모와 의상과는 달리 매우 강렬한 사운드의 연주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객석을 열광시켰다. 작사ㆍ작곡ㆍ편곡을 비롯해 모든 연주까지 직접 녹음하고 라이브로 소화하는 가챠릭 스핀은 말 그대로 진짜 ‘밴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공연 전 기자와 만난 가챠릭 스핀의 멤버 마이(댄서 1호), 토모조(기타), 하나(드럼ㆍ보컬), 코가(베이스), 오레오(키보드ㆍ보컬), 넨네(댄서 3호)는 입을 모아 끊임없는 창작과 연습 등 음악적 기본에 충실해야 밴드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하나는 “우리는 팬들에게 라이브를 들려주는 밴드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고 있다”며 “공연을 다니는 중에도 숙소에서 틈틈이 곡을 만들고 멤버들과 의논하는 등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0년 일본 인디즈 시장에서 싱글 ‘록 온(Lock on!)’으로 데뷔한 가챠릭 스핀은 최근 일본의 빅터(Victor)를 통해 정규 2집 ‘뮤직 배틀러(Music Battler)’를 발표하며 메이저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이 앨범의 수록곡 ‘돈트 렛 미 다운(Don’t Let Me Down)’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카이’에 삽입돼 가챠릭 스핀에게 유명세를 안겼다.

코가는 “무대를 대하는 방식은 인디즈 시절이나 메이저로 활동하는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고, 그저 관객들에게 라이브로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메이저 데뷔는 우리의 음악을 더 많이 들려주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토모조는 “전 세대에 걸쳐 인기를 모으는 애니메이션에 우리의 음악이 삽입된 것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덕분에 인디즈 시절과 비교해 가족 단위로 우리를 응원해주는 팬들이 늘어났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출신 걸밴드 가챠릭 스핀(Gacharic Spin)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디딤홀에서 내한공연을 벌이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일본에선 현재 가챠릭 스핀을 비롯해 히스테릭 로리타, 라벤더, 스캔들 등 많은 걸밴드 아이돌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들은 모두 안정적인 연주력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본 걸밴드 시장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챠릭 스핀은 댄서 두 명을 따로 멤버로 두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다른 멤버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댄서들은 쉴 새 없이 무대 곳곳을 오가며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벌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자칫 무대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밴드의 손발이 돼 주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다가 댄서 멤버를 따로 두게 됐다”며 “덕분에 강렬한 음악을 더욱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도 최근 들어 스토리셀러(StorySeller), 워킹애프터유(Waking After U), 에이파티(A-FATI) 등 본격적으로 걸밴드를 표방하는 밴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코가는 “밴드로 활동하다 보면 매우 고된 일들을 많이 겪게 되지만 견뎌내야 한다”며 “우리는 우리를 하나의 ‘밴드’로 생각하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집에서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 앞에서 라이브를 선보이는 것이 밴드의 성장에 가장 필요하다”며 “밴드로 유명해지고 싶다면 일단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