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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69. 서늘한 가을 속 뜨거운 유혹 ‘둥근잎유홍초’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9. 22.

지난주는 추석 연휴라 '식물왕'을 쉬었다.

추석 연휴 막바지에 준면 씨와 청계천에 들렀다.

걷다보니 기사로 다뤄야 할 꽃들의 목록이 차례로 머릿속에 잡혔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뤄야 할 꽃은 둥근잎유홍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질 때쯤에 피는 여름을 닮은 꽃이니 말이다.

지난해 시기를 놓쳐 다루지 못했는데, 1년이 지난 후에야 다룬다.


이 기사는 9월 23일자 헤럴드경제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어느덧 추분(秋分)이 왔습니다. 추분을 기점으로 낮보다 길어지는 밤은, 멀게만 느껴졌던 한 해의 끝이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분은 꽤 서운한 절기입니다. 많은 식물들의 생장이 추분 무렵부터 더뎌지기 때문이죠. 이는 곧 새로운 꽃과 마주칠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보이는 꽃들을 부지런히 눈에 담아야 할 때입니다.

대체로 강렬한 원색을 자랑하는 여름꽃과는 달리, 가을꽃의 색은 봄꽃처럼 파스텔 톤에 가까운 편입니다. 봄꽃과 차이가 있다면, 가을꽃의 파스텔 톤에선 봄꽃보다 메마른 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계절에도 작지만 여름꽃 이상의 강렬한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둥근잎유홍초입니다.


서울 청계천 부근에서 촬영한 둥근잎유홍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둥근잎유홍초는 메꽃과의 한해살이풀로, 열대 아메리카 지역을 원산으로 합니다. 둥근잎유홍초는 매년 8∼9월이면 전국 곳곳의 풀숲에 덩굴을 감으며 주홍색 꽃을 가득 피우죠. 당초 둥근잎유홍초는 원예종으로 국내에 도입된 식물입니다. 그러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미대륙 원산 식물답게, 둥근잎유홍초는 태평양 건너 낯선 땅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해 자생하고 있습니다. 

둥근잎유홍초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홍초라는 식물도 따로 존재합니다. 유홍초는 나팔꽃을 축소한 듯한 통꽃을 피우는 둥근잎유홍초와는 달리, 별 모양을 닮은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잎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원조보다 둥근잎유홍초가 흔하게 눈에 띕니다. 이맘 때 길가에서 주홍색 꽃을 보셨다면 유홍초가 아니라 둥근잎유홍초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둥근잎유홍초는 신약의 원료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내의 한 연구소기업이 둥근잎유홍초에서 항당뇨 효과를 가진 물질을 추출해내는데 성공한 것이죠.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 연구팀은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성분을 추출해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중국 연구자 최초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천연물 신약, 현대 의약품 상당수가 세계 각국의 전통약초나 한약재로부터 성분 추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둥근잎유홍초를 비롯한 우리 주변에 흔한 식물들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지 모를 일입니다. 


서울 청계천 부근에서 촬영한 둥근잎유홍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둥근잎유홍초의 꽃말은 “영원히 사랑스러워”라고 하더군요. 높고 파란 가을하늘과 둥근잎유홍초가 이뤄내는 선명한 보색 대비는 대단히 매혹적이어서, 이 같은 꽃말이 결코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에 산책을 하실 계획이 있다면, 길가의 화단이나 풀숲을 무심코 지나치지 마세요. 서늘함 속에 뜨거움을 간직한 꽃들이 덩굴째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