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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71. 세상에 잡초란 없다고 외치는 ‘여뀌’의 매운맛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0. 6.

얼마 전에 청계천을 걷다보니 여뀌가 많이 보였다.

여뀌는 이맘 때 천변이나 습기가 많은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그런데 여뀌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지금까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고, 그나마 눈길을 주는 사람도 강아지풀이나 수크령과 비슷하게 생긴 잡초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뀌는 잡초로 취급하기엔 쓸모가 많은 식물인데,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아 안타까워 글을 남겼다.


이 기사는 10월 7일자 헤럴드경제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여러분은 천렵(川獵)을 좋아하시나요? 천렵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식도락도 즐기실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그런 분이라면 아마도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을 눈여겨보셨을 것이고, 그 중 ‘천렵’ 편을 흥미롭게 일독하셨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작품 속에선 한 등장인물이 물고기를 잡겠다며 물가에서 풀을 한 움큼 뜯어 짓이긴 뒤 물에 띄우는데, 어설픈 지식 때문에 물고기를 잡는데 실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풀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이름을 기억하진 못해도, 이맘 때 길에서 그 풀이 꽃을 피운 모습을 목격하신 분들은 많을 겁니다. 여뀌는 이맘 때 천변과 습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식물이죠.

서울 청계천변에서 촬영한 여뀌.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여뀌는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매년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꽃을 피웁니다. 여뀌는 붉은색, 흰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데 우리나라에선 붉은색 꽃이 많이 보이는 편이죠. 여뀌의 꽃은 언뜻 보면 꽃보다는 열매에 가까운 모양새를 갖고 있습니다. 줄기를 늘어뜨린 모양도 흔하디흔한 강아지풀을 닮아 잡초로 취급받는 일이 다반사이죠. 그러나 여뀌를 자세히 살펴보면 열매처럼 보였던 작은 알갱이들이 모두 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를 헤아리는 일이 어려울만큼 많죠.

여뀌라는 독특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의 ‘역귀(逆鬼)’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많이 보입니다. 여뀌의 잎은 매운맛을 냅니다. 이 때문에 영미권에선 여뀌를 물후추라는 의미를 가진 ‘워터 페퍼(Water Pepper)’라고 부르죠. 여뀌를 천렵에 이용하는 이유도 그 매운맛 성분이 물고기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꽃이 붉고 잎이 매우니, 여뀌의 이름에 그런 설이 엮여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비록 잡초 취급을 받는 여뀌이지만, 그 쓰임새는 결코 잡초라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습니다. 여뀌는 예부터 음식, 향신료, 약초로 흔히 쓰여 왔습니다. 여뀌의 어린잎은 데치거나 삶아서 나물로 먹습니다. 술을 빚을 때 쓰이는 누룩을 제조할 때 여뀌의 즙을 넣으면 술이 쉽게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에선 여뀌를 생선요리의 비린내를 없애는 향신료로 사용한다는군요. 동의보감은 여뀌가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뀌 추출물이 항염 및 면역억제, 항산화 효과를 인정받아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여뀌가 잡초로 보이지 않죠?

서울 청계천변에서 촬영한 여뀌.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여뀌의 꽃말은 ‘학업의 마침’이라고 합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꽃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고개를 숙여 자잘한 꽃들이 뭉쳐 있는 여뀌를 살피다 보면, 이 꽃말이 어떤 대상이든 함부로 잡초처럼 취급하지 말고 공부를 더 하라는 잠언처럼 들려 뒤통수가 얼얼해집니다. 세상에 잡초란 없습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