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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2016.11.13) 왜 내가 이러고 있나(충주 수안보~상주 상풍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13.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 아! 아! 아이고~~"(무키무키만만수 '투쟁과 다이어트' 中)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사서 하는 몸이라 할 말은 별로 없지만, 몸이 너무 고되니 무키무키만만수의 '투쟁과 다이어트'의 가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던 하루였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일이니 이런 경험도 해본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오늘 일정은 시작부터 온 몸에 긴장감이 돌게 만들었다.

자전거 국토종주 구간 중 '헬 오브 헬'로 유명한 이화령이 바로 오늘 일정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숙소에서 탕에 물을 받아 몸을 지지고 나왔다.

수안보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숙박업소에서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

온몸에 쑤시지 않은 곳이 없다보니, 탕이 약처럼 느껴졌다.




아침식사는 올갱이해장국으로 해결했다.

충청도 사람들에겐 올갱이란 말보다 다슬기란 말이 더 익숙한 데, 외지인 때문에 다슬기란 말을 잘 안 쓰나 보다.

꽤 맛있었다. 충청도는 원래 질 좋은 다슬기가 많은 나는 곳이다.

 





새재 자전거길은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전용도로보다는 국도와 지방도를 공유하는 구간이 많고, 이렇게 농로 사이를 지나가는 구간도 많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런 풍경이 흔하게 보인다.

정겨운 풍경이긴 하지만, 주민들이 라이더들을 반가워할진 의문이다.




수안보-이화령 구간은 시작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터 지쳤는데, 이화령은 16km나 남았다니...

힘이 쭉 빠지는 순간이었다.




이화령 전에 만나게 되는 소조령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괴산군이 나타났다.

소조령은 충주와 괴산의 경계이다.





소조령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행촌교차로에서 뜬금없이 인증센터가 하나 나타난다.

이화령 인증센터가 아니니 절대 반가워 할 필요가 없다.

이 인증센터는 괴산군과 세종시를 연결하는 오천자전거길의 시작점에 위치한 인증센터이다.

그래도 들른 게 아까워 인증도장을 수첩에 찍었다.




행촌교차로 인증센터 부근에 철을 모르고 피어있던 꽃잔디.

봄꽃이 늦가을에 피어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행촌교차로에서 이화령 방향으로 틀자마자 만나게 되는 오르막길에서, 이 구간의 위엄이 느껴졌다.





이화령으로 올라가는 구간은 완경사가 약 6km에 걸쳐 계속 이어진다.

나중에 느낀 점이지만, 이 구간이 사실 대단한 난이도를 가진 구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토종주를 하는 라이더들이 이 구간을 만날 시점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완경사를 만나니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입으로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올라갔다. 





나는 당당하게 '끌바'로 이화령을 향해 올라갔다.

미니벨로로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무리인데다, 페달을 밟을 힘도 없었다.

국토종주 중 나를 제외하고 단 한 명도 미니벨로를 타는 라이더를 보지 못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완경사에서 '끌바'를 하는 일은 죽을 맛이었다.

역시 내가 실수한 것이 맞다.





이화령 구간에서 유독 많은 라이더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구간이 라이더들에겐 일종의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가 보다.

모두들 정상을 향해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문득 내 '끌바'가 조금 민망해졌다. 





거의 2시간 30분여의 '끌바'를 한 끝에 이화령 인증센터에 도달했다.

이날 온전히 '끌바'로 긴 시간에 걸쳐 이화령으로 올라온 이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자랑은 아니다.

 




이화령의 높이는 548m이다.

어지간한 낮은 산보다 훨씬 높다.

아래를 굽어보니 높이가 느껴졌다.

이 높이를 '끌바'로 올라오다니... 나도 대단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왔으니 인증샷은 박아야 하지 않겠나.

근처에 있던 라이더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이화령에 오르는 동안 아침에 먹었던 올갱이해장국이 모두 소화됐다.

급하게 우동 한 그릇을 투여했다.






우동 연료 주입을 마쳤으니 출발!

이화령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나는 경상도로 진입했다.





생전 처음 문경 땅을 밟았다.

그것도 자전거로.





힘들게 올라왔다면, 내려갈 일이 기다린다.

내리막길이 올라온 길의 길이와 비슷한 6km에 걸쳐 이어진다.

내리막길에서야 비로소 주변 풍경들이 보였다.

늦가을의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이제야 이런 풍경을 제대로 보게 되다니...





이화령 고개 아래로 내려오자 한우를 판매하는 매장이 보였다.

국토종주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조선시대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던 간선도로인 영남대로의 문경 관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영남대로 관문 근처에 핀 산국에는 아직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국화에도 벌들이 바쁘게 날아들었다.




민들레는 늘 철을 모르고 피어나곤 한다.




벌개미취도 끝물이다.




애기똥풀이 봄꽃이란 말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눈에 띄니 말이다.





이젠 떨어질 낙업도 많지 않다.

곧 겨울이 오긴 오려나 보다.








라이딩은 친구들과 동행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주간에 해야한다는 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다.

이런 풍경들은 절대 밤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화령에서 워낙 힘을 많이 뺸 터라 한참만에 다음 인증센터인 문경불정역에 도착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무조건 상주 상풍교에는 도착해야하는데...

오늘도 야간 라이딩 당첨! ㅜㅜ




불정역은 열차가 서지 않아서 불정역인가보다.

열차를 활용한 펜션을 운영했나본데,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사용중지 표시를 보지 못하고 민망하게 계속 멈춰 서 있었다.

아니..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보다.







이화령을 벗어나니 라이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국토종주를 하는 이들이 거의 없어서 그런가 보다.

자전거가 잘 다니지 않는 듯, 문경 시내 자전거길의 많은 부분이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 해가 지고 있다.

또 야간 라이딩 당첨...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휑했다.





내가 야간 라이딩을 안 할리가 없지...ㅠㅠ




어둠속을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느닷없이 상주 시내로 진입했다.

상주 역시 문경과 마찬가지로 생전 처음 땅을 밟는 동네이다.

그것도 자전거로 도착해서 밟다니.




문경과 상주 모두 대체적으로 자전거 도로의 노면 상태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가로등을 비롯해 조명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구간이 대부분이란 점이다.

야간 라이딩에는 무리가 있는 구간이다.





정신 없이 달리다보니, 내가 어느새 낙동강변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페달을 밟고 있었다.

서해안에서 출발해 자전거로 낙동강까지 도달하다니...

어둠에 잠긴 낙동강의 물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마침내 새재 자전거길이 종착역인 상주상풍교에 도착했다.

한강 구간에 비해 많이 힘들었지만, 볼거리는 많은 구간이었다.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에는 다양한 곳을 가리키는 교차로가 있다.

낙동강 종주를 위해 안동댐으로 향하는 방향, 새재 자전거길 방향, 국토종주 방향이 모두 한 곳의 교차로에서 갈린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던가.


잘못 선택하면 훅 간다. 오늘도 그랬다.

상풍교에서 가까운 곳에 라이더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서 경천대관광지가 눈에 띄었다.

경천대관광지는 상풍교 바로 다음 인증센터가 위치한 상주보와 가까웠다.

나는 '관광지'라는 단어에 혹한 나머지 경천대로 향했다. 

수안보와 비슷한 곳이겠거니라고 생각하며...




이제 딱 절반의 코스를 소화했다.

낙동강이 전체 종주코스의 절반이다.

정말 긴 강이다.





이화령이 '헬 오브 헬'이라고?

내가 보기엔 경천대로 가는 길이야말로 '헬 오브 헬'이다.

이 곳의 오르막길은 '끌바'를 하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엄청난 각도를 자랑했다.

이화령 구간보다 길이는 훨씬 짧지만 임팩트는 컸다.

막판에 진이 빠져 욕을 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조명도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구간을 자전거도로라고!!


더욱 열 받는 점은 이 구간에서 내가 핸드폰까지 분실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도저히 핸드폰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젠장... ㅜㅜ

내가 연락을 받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경천대관광지 초입의 조명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런데 도착하니 아무 것도 없었다.

숙소로 비싼 펜션 하나 밖에 없었고, 음식점도 오후 9시면 영업을 끝냈다.




멀지 않은 곳에 허름한 모텔 하나가 있었다.

숙소라고는 근처에 이 곳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핸드폰 분실에 이어 안경알까지 빠지다니... ㅜㅜ

임시로 요령을 발휘해 안경알을 다시 테에 박아넣었다.




문제는 식사 해결이었다.
나는 경천대관광지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열은 식당은 커녕 편의점이나 가게도 하나 없었다.
내가 잡은 모텔은 식당도 겸하는 곳이었는데, 이 곳 역시 이미 영업을 마친 상황이었다.
남은 음식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모텔 주인 할머니가 내게 두부와 막걸리를 한상 차려줬다.
정말 꿀맛이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