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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2016.11.12)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여주 강천보~충주 수안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13.

날이 쌀쌀하고 볼만한 풍경이 드물어진 계절이기 때문인지 길에서 라이더들을 마주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는 때로는 가벼운 인사로, 혹은 긴 대화로 짧은 인연을 맺었다.

짧은 인연에서도 생각할 거리와 느낀 바가 많았다.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에 대해서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 하고 싶다.




불야성이었던 여주시청 부근 시장 골목은 아침에는 고요했다.

아침밥을 먹을만한 곳은 김밥천국이 전부였다.

계란말이치즈김밥에 라면이면 황송하다.

정말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인증센터가 위치한 강천보로 향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엉덩이와 손바닥의 통증은 여전했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었다.





숙소에서 강천보가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인증센터에서 수첩에 인증도장을 찍는 일은 질리지 않고 즐겁다.

인증센터에 도착해 도장을 찍는 일은 지칠 때 포기하지 않고 달리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느 보와 마찬가지로 강천보 상단에도 도로가 조성돼 있다.




강천보 위 도로 중간 쯤에서 촬영한 풍경.




햇빛이 하루종일 내리쬐이는 곳은 여전히 파릇파릇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쑥과 토끼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저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강원도 원주에 진입했다.

경기도를 벗어나자 비로소 먼곳에 온 느낌이 들었다.

원주시는 사실상 수도권과 생활권이 가까운 도시이지만, 강원도는 늘 뭔가 멀게 느껴지는 곳 아닌가.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강원도까지 도달하다니, 이제야 뭔가 국토종주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주와 원주를 연결하는 섬강교 중간 지점에서 촬영한 풍경.







이런 풍경들은 낮에 라이딩을 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밤에 이 코스를 라이딩 한다면 암흑 속을 헤쳐가야 할 것이다.

어둠에 고라니의 사람 비명 소리 피처링까지 더해지면 뭐...





원주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충북 충주시가 나왔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 지점은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충주 시계에 진입했다고 충주인 것은 아니다.

충주는 생각보다 정말 넓다.

하루 종일 페달을 밟아도 벗어나지 어려울 정도로.





오후 3시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평지에서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달리는 게 옳다.




물론 눈으로든 렌즈로든 담을 수 있는 풍경은 많이 담을수록 좋다.





한참 동안 달려 도착한 충주 비내섬 인증센터.





이 곳은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수시로 이곳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비내섬 휴게소에 잠시 앉아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가까운 숙소는 탄금대 부근에 있었다.

내 주행속도를 감안하면 탄금대에는 초저녁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그 다음에 숙소가 위치한 곳은 수안보였다.

수안보는 탄금대에서 거의 30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지도를 살펴보니 외진 길이 많았다.

국토종주 코스에서 가장 난코스로 손꼽히는 구간은 수안보 바로 다음 구간인 이화령 휴게소이다.

야간 라이딩을 해 밤 늦게 도착하더라도 수안보에 도착해야 다음날을 위한 체력안배가 이뤄질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수안보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익은 고추가 수확되지 못한 채 말라 썩어가고 있었다.

수확되지 못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터이다.

거둬서 팔기에 수지타산이 안 맞거나, 아니면 거둘 인력이 없거나.

이런 고추밭이 곳곳에서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오가는 사람과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늘 나를 뒤 따라온 어떤 초로의 사내(50대 말 정도로 보였다)가 내게 많은 말을 걸었다.

그는 서울에서 출발해 충주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나도 그에게 "부산을 향해 페달을 밟고 있다"고 이야기하자,그는 "어떻게 그 작은 자전거로 부산까지 갈 생각이냐"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엉덩이가 너무 아파 충주역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쥐뿔 아는 것도 없지만 "그냥 돌아가는 것은 좀 아까운 것 같다"고 운을 띄우며 "하루만 더 달려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도 첫 날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고통이 익숙해져 페달을 밟을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심 나와 함께 종주하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자전거는 미니벨로였고 그는 고급 MTB였다.

게다가 나는 사진을 수시로 촬영하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속도를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며 그를 먼저 떠나보냈다.

조금 미안했다.


고통에 익숙해지는 게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예 그런 일이 없으면 참 좋을텐데, 세상일이 뭐 그렇지 않으니..




'벼슬바위'라는 솔깃한 이름의 명물을 발견했다.

이 바위에 기도하면 큰 벼슬을 얻을 수 있단다

그 전설에 혹해 기도를 하려고 준비하다가, 벼슬을 얻으면 또 뭐하나 싶어서 그만뒀다.

우병우 같은 인간도 있는데 벼슬은 개뿔...






능암리라는 철새도래지인데 새들이라곤 오리밖에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어떤 모습이든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초코바가 이렇게 괜찮은 물건이란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허기도 달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아졌다.

단 것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왜 환장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코스 중간에 마련된 쉼터에서 초코바를 먹으며 쉬다가 흥미롭고도 안타까운 대화에 잠시 끼어들었다.

내 뒤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두명이 쉼터로 들어왔는데, 이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니 이들은 취업준비생들이었다.

이들은 국토종주 중이었는데, 국토종주를 취업스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에 놀라 나는 잠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들은 국토종주를 하며 수첩에 인증도장을 모두 찍어 인증메달을 받으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한 국토종주라니... 


나는 내 신분을 기자라고 밝히며 이것저것 더 물었다.

그러자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들의 입에서 더 튀어나왔다.

인증수첩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전국의 인증센터를 다니며 도장을 찍어 취업준비생들에게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취업을 위한 국토종주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취업 스펙으로 내세우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행복해지기 위한 달리기가 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도망치기로 변질된 것인가?


이들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만든 사회가 문제인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해가 저물어 간다.




조정지댐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잠시 시행착오가 벌어졌다.





조정지댐 근처의 이정표는 충주댐과 탄금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었다.

충주댐은 국토종주에선 거쳐갈 필요가 없는 목적지이다. 국토종주를 위해선 바로 탄금대로 떠나야 한다.

그런데 충주댐으로 향하는 자전거 도로는 '국토종주'라는 표시가 돼 있었고, 탄금대로 향하는 자전거 전용도로 데크에는 그 표시가 없었다.

탄금대로 향하는 도로도 자전거도로여서 나는 이 도로를 택했다.

그것이 큰 실수였다.






데크형 도로의 초입은 좋았다.

그 이후가 고통이었지...





충주에는 댐으로 만들어진 큰 호수 충주호가 있어서 내수면어업이 활성화 돼 있다.

충주호와 가까운 탄금호에서도 민물고기 잡이가 이뤄지고 있었다.





석양이 아름다워야 하지만, 야간 라이딩을 할 생각을 하니 고민부터 생긴다.




국토종주길은 아니지만 호수를 따라가면 될 줄 알았다.





문제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있지 않은 데다, 차량 통행이 많은 길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겨우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위험한 길이었다. 많이 후회했다.





겨우 도착한 탄금대 인증센터.





탄금대 인증센터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시작된 한강 종주길은 여기에서 끝난다.

여기에선 새제 자전거 길이 새로 시작된다.

그 긴 한강 길을 자전거로 주파하다니...

하지만 낙동강 종주길이 훨씬 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발!!




탄금대를 떠난 시간은 오후 6시 10분.

숙소를 잡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수안보로 가기 위해선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없었다.





야간 라이딩의 장점은 아무 생각 없이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은 많다. 우선 어두워서 경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교외라면 조명도 제대로 설치 돼 있지 않아 어둠 속을 달려야 한다.






종주 중 처음 만난 비포장도로.

고민 끝에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했다.

비포장도로 위에서 페달을 밟다가 튜브가 터지면 답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두우니 튜브를 교체할 형편도 못 되는 상황이다.





비포장도로 '끌바'중 좋은 친구가 돼 준 추파춥스.





노면 상태가 참 아름답다.





'끌바'를 마치자마자 만난 횟집.

당장 자전거를 버리고 들어가 회에서 소주를 먹고 뻗고 싶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많은 별들이 보였다.

별 볼일 없는 세상에 살다가 이제야 별을 보게 되다니...

야간 라이딩의 짜증이 잠시나마 누그러진 순간이었다.





전조등의 배터리가 나갔다.

이 전조등은 USB 포트로 배터리를 충전한다.

준면 씨에게서 샤오미 배터리를 빌려오길 정말 잘 했다.





인증센터를 예고하는 간판은 언제나 아름답다.

저 간판은 없던 힘도 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겨우겨우 도착한 수안보 인증센터.

인증수첩에 도장을 찍는 손의 힘이 유독 강하게 들어갔다.






관광지 답게 조명도 화려했다.

그만큼 숙소를 찾기 쉽다는 이야기이다.

눈에 맨 처음 보였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종주를 떠날 때 짐을 최소한으로 챙겼다.

여벌의 옷이 많지 않아, 목욕을 마친 뒤 빨래를 했다.

내일 빨래가 모두 잘 마르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