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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2016.11.15) 어설픈 꼼수는 화를 부른다(대구 강정보~창녕 남지읍)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16.

어설픈 꼼수는 뒤탈을 남기기 마련이다.

완벽한 알리바이나 대책을 만들지 않는 이상, 꼼수는 그 순간에만 유효할 뿐이다.

오늘 자전거 여행에선 어설픈 꼼수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제대로 배웠다.

꼼수를 부릴 바엔 그냥 바보처럼 솔직한 게 낫다.

아니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속이던가.




아침에 식사로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고 모텔에서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워낙 좋아하는 컵라면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산철쭉이 눈에 띄었다.

봄에 필 꽃이 늦가을에 피어있다니 아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무릎과 허벅지가 아팠다.

엉덩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무릎이 시끈거렸다.

숙소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약국에서 진통제와 관절염 약을 구입해 바로 먹었다.

지금 당장 내 몸에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


숙소는 무조건 국토종주길과 가까운 곳에 잡는 게 좋다

아침부터 4~5km 달려 길 위에 자전거를 올려 놓는 일은, 길에서 자전거를 모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거의 끌바로 자전거를 길 위로 옮겼다.




강정보 근처의 한 텃밭에서 부추꽃을 만났다.

부추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내년에는 '식물왕'으로 우리가 먹는 채소들이 피우는 꽃에 대해 연재해 볼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전에 가장 싫어했던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지금은 박근혜가 더 싫지만, 이명박이 가장 천박했던 대통령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이명박이지만, 그가 서울시장에 남긴 2가지 업적은 지금도 지지한다.

하나는 버스노선 개편이고 나머지 하나는 청계천 복구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대강 자전거 도로는 정말로 괜찮은 인프라이다.

처음에 나는 국토종주를 시작할 때 자전거 도로와 주변 환경이 얼마나 엉망인지 살펴보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종주를 하자 그 계획은 산산조각났다.

이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4대강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를 위한 고속도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안전하게 그리고 빠르게 자전거로 전 국토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이명박의 대통령 시절 업적 중 지지할 하나가 처음으로 생겼다.





밤에 조명으로 화려했던 강정보는 낮에는 수수했다.






강정고령보는 대구와 고령의 경계이다.





오늘 날씨는 그동안 여행하며 접한 날씨 중 가장 맑았다

적당히 시원한 기온과 맑고 파란 하늘.

좋은 날씨는 자체로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 예정된 마지막 구간은 합천창녕보와 창녕함안보 사이의 구간이다.

이 구간은 국토 종주 코스 중에서도 이화령과 더불어 최악의 난이도로 유명하고, 또 가장 긴 구간(55km)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이 구간에서 야간 라이딩은 피하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달성보로 향하던 중 지도를 살펴보니 5번 국도를 타고 가면 빨리 달성보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원래 경로에서 벗어나 5번 국도를 타는 꼼수를 부렸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5번 국도를 통해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전거 도로는 오가는 행인들로 인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었고, 차도는 수많은 차량들의 통행 때문에 오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래도 이왕 오른 길이어서 꾸역꾸역 페달을 밟는 데 뭔가 좀 이상했다.

페달을 밟을수록 점점 사람들과 차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아뿔싸....

나는 목적지와 정반대인 시내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도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냥 움직였던 방향 그대로 페달을 밟은 것이 화근이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힘이 빠짐과 동시에 허기가 졌는데 KFC가 보였다.




여행 내내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가 치킨이다.

일단 치킨을 먹으며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여기서 다시 달성보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방법이 하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마침 내 자전거는 크기가 작은 미니벨로이고 접으면 대형 여행가방 수준 크기로 줄어드는 녀석이었다.




민망하지만 버스로 달성보까지 이동했다.

버스로 이동시간만 무려 50분이 걸렸다.

이 거리를 다시 자전거로 돌아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 시간 동안 잠시 다리를 쉴 수 있어 좋았다.





조금 민망하게 달성보에 도착해 인증도장을 찍었다.

달성보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1시를 넘긴 상황이었다.





달성보 인증센터 내부에는 합천창녕보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우회로 안내 지도가 붙어있었다.

합천창녕보와 창녕함안보 사이 구간에서 야간라이딩을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이 지도대로 페달을 밟기로 결정했다.

이 두 번째 꼼수는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




달성보를 뒤로 하고 일단 합천창녕보로 향했다.




낙동강 주변의 날씨는 초가을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따스했다.

남쪽과 북쪽은 확실하게 다르다.




두 번째 꼼수가 제대로 통해 빠른 시간 안에 합천창녕보에 닿는 상상을 하며 기분 좋게 페달을 밟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여름꽃 기생초가 여태 피어있다니.

남쪽 기온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기분 상의 착각이 아니다.

여름 이후 보지 못한 이 녀석을 늦가을에 다시 보니 정말 반가웠다.





원래 국토종주 코스에 따르면 도동서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달성보에서 사진으로 촬영한 우회도로 지도는 구지, 대리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좋았다.

달성보에 붙어있던 지도는 대단히 간략화 된 지도였기 때문이다.





촬영해 온 지도에는 방향 전환 시 이동방향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중반 이상까진 제대로 간 게 확실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길을 잘못든 것 같다. 




잘못 들지 않고서야 이런 'Welcome To The Jungle' 수준의 길이 계속 이어지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창녕군에 진입했을 때까진 내가 제대로 온 줄 알았다.

큰 길을 따라 신나게 페달을 밟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합천창녕보인데 그 어느 표지판도 합천을 표시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강이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곳에서 잠시 멈춘 뒤, 지도를 다시 꺼내 자세히 살펴봤다.

나는 합천창녕보와 정반대 방향으로 페달을 밟고 있었다.

아까 달성보로 갈 때와는 달리 이곳에선 버스도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자전거페달을 밟으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야간 라이딩 확정!





종주코스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한참만에야 다시 발견했다.

이 흔한 표지판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종주 내내 길에서 눈에 담았던 흔한 풍경인데,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합천창녕보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에선 임도를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내 자전거는 MTB가 아니라 임도에서 펑크 없이 버티기가 힘들다.

이번에는 꼼수가 아닌 공인된(?) 우회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임도를 따라가면 무심사라는 절이 나온다.

이 절이 자전거 여행객들 사이에선 꽤 유명하다.

자전거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내일 부산에 도착할 예정만 아니라면 한 번 가볼만한 곳이긴 한데, 아쉽게 돌아섰다.




겨우겨우 합천창녕보에 도착했다.

괜한 꼼수만 부리지 않았으면 한참 전에 도착했을 곳인데, 귀한 시간만 버렸다.

오늘의 마지막 구간이자 가장 긴 합천창녕보와 창녕함안보 구간이 남아있는데, 해가 거의 진 상황이었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합천창녕보에는 편의점 하나가 위치해있다.

이 편의점에서 물과 먹을거리 몇 가지를 보급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여행 첫 날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야간 라이딩을 한 터라, 별 걱정없이 야간 라이딩을 선택했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를 패서라도 야간 라이딩을 말릴 것이다.

이번 여행 최악의 상황을 이 구간에서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이 코스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잠긴 끝없는 길, 이화령 빰치는 급경사의 연속, 사실상 MTB 코스인 긴 임도, 멧돼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도착했으니 일단 인증을 해야.




전땅크의 고향 합천에 생전 처음 발을 들였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들였는데, 해가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진 자신만만했다.




해가 저무는데도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코스는 예상대로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경험한 풍경이니까.




그저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목적지에 무사히 닿을 줄 알았다.





성실하게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의령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 생고생이 시작됐다.





이 코스는 중반 이후부터 오르막으로 나를 괴롭혔다.

라이더는 커녕 단 한 대의 차량도 다니지 않았다.

바람 소리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고라니 울음소리(이 소리는 사람 비명소리를 닮았다)....

 




주변에 빛이 없으니 하늘을 올려다보면 정말 많은 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야간 라이딩의 묘미이긴 하지만 이 묘미 하나로 홀로 야간라이딩을 즐기긴 힘겹다.




경사가 정말 보통이 아니다.






옹벽에 새겨진 수많은 낙서들이 이 코스의 악랄함을 드러내 보여준다.

라이더들은 이 낙서를 낮에 새겼을 것이다.

밤에는 이런 걸 새길 겨를이 없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괜히 신경 쓰이고, 얼른 여기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니 말이다.





게다가 오르막도 길다.

날이 저물어 기온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다.





고개의 내리막을 내려온 뒤 오르막이 끝난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다.

방금 전에 지난 고개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 곳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임도였다.

강제로 야간산행을 하게 될 줄이야...

앞서 두 번에 걸친 꼼수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임도란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MTB에나 어울리는 비포장도로 수준의 길이 한참동안 이어졌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타이어가 펑크날까봐 하는 수없이 끌바를 했다.

끌바를 할 동안 청설모로 추정되는 작은 짐승들이 가끔씩 내 앞을 지나가 깜짝깜짝 놀랐다.

이 놀라움은 임도에서 내려온 뒤 바로 경험하게 될 일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임도에서 내려온 뒤 농로에서 나는 생전 처음 멧돼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린아이 크기 만한 멧돼지가 약 20m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어제에는 낮에 뱀 때문에 혼비백산했는데, 이번에는 멧돼지라니.. 아놔...

주위에는 사람도 민가의 불빛도 전혀 없었다.


멧돼지는 간을 보는지 나를 향해 달려오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 벨을 요란하게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멧돼지를 쫓았다.

다행스럽게도 멧돼지는 농로 옆 논으로 뛰어들며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로 자전거 페달을 밟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멧돼지가 혹시 논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 자세히 살펴봤다.

사진에선 멧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전 속력으로 이 길을 빠져 나왔다.




농로를 빠져나오자 먼 곳에서 빛이 보였다.

나는 저 빛을 향해 바로 페달을 밟았다.

다행스럽게도 저 불빛은 내가 오늘 숙박을하려고 했던 남지읍의 불빛이었다.




남지읍에는 모텔이 많아 쉽게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저 불빛을 가까이에서 본 뒤에야 아까 멧돼지를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코스가 코스인 까닭에 이곳에선 자전거 여행객들이 많이 묵나 보다.

다른 지역의 모텔과는 달리 이 지역의 모텔은 자전거 거치대를 비롯해 자전거여행객을 위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재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서 모텔 인근의 닭집에서 닭 한마리를 주문해 지역소주인 '좋은데이'와 함께 먹었다.

내일 부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