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거 국토종주/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2016.11.14) 좋은 관성, 나쁜 관성(상주 상주보~대구 강정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14.

최근 며칠간의 내 몸 상태 변화는 배터리에 비유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날 100% 충전된 상태였다가 방전된 뒤, 둘째 날에는 80% 충전됐다가 방전되고, 셋째 날에는 70% 충전됐다가 방전된 뒤, 넷째 날에는 60% 충전됐다가 방전되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매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페달을 밟을 힘이 모자라서 균형을 못 잡아 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구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주행거리는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체력이 최하인 상태였던 오늘은 주행거리 100km를 훌쩍 넘겼다. 장거리용으로는 말도 안 되는 미니벨로로 말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해보니, 관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몸과 정신이 자전거를 타는 일에 익숙해지고, 목표가 점점 가까워지니, 이젠 멈출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이런 관성은 좋은 관성이 아닐까?


관성은 우리의 삶에 항상 존재한다. 특히 업무에서 그런 부분이 두드러진다. 

일도 처음 배울 때에나 어렵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익숙해진 일을 더욱 갈고 닦아 전문가로 거듭난다면, 그 관성은 좋은 관성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 흠뻑 젖어 게을러지면 그 관성은 나쁜 관성일 것이다.


페달을 밟으며 내가 좋은 관성과 나쁜 관성 중 어떤 관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 고민해봤다. 

부끄럽게도 후자인 것 같다. 

여행 중 느낀 잡생각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여행 4일차까진 늦잠을 자고 오전 10시쯤에 출발했는데, 이렇게 늦게 출발하다보니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야간 라이딩을 하지 않으려고 조금 일찍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자전거의 도시를 자처하는 상주시에는 다른 도시에는 없는 자전거박물관이 있다.

자전거 박물관에서 무료로 자전거 점검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는데, 너무 이른 시간 때문인지 개장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햇살이 떠오르며 낙동강 수면 위에 자욱하게 깔려있던 안개를 걷어냈다.






숙소와 가까운 상주보 인증센터에 들러 인증도장을 찍었다.

도장은 찍어야 제 맛이다.





상주보와 낙단보를 잇는 코스는 이화령 이상으로 인내를 시험하게 만든다.

노면 상태도 고르지 않은데다, 끊임 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니 말이다.





비포장도로와 다름 없는 이 도로의 상태를 보라.

이런 길이 많아 타이어에 펑크가 날까봐 내리막길에서도 끌바를 해야만 했다.





아침을 먹지 못해서 비상식량을 꺼내 허기를 달랬다.





상주보와 낙단보를 잇는 구간의 중간 쯤에는 이 코스를 다녀간 이들의 수많은 낙서가 새겨져 있다.

저 낙서가 바로 이 코스를 지나가는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자전거의 도시 상주에는 코스 곳곳에 타이어 공기 주입기가 설치돼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이어에 공기를 추가로 더 주입했다.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에서 수도권을 벗어나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가 보급이다.

편의점은 커녕 조그만 가게 하나와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가게가 보인다면 반드시 물이나 비상식량 보급을 해야 한다.

언제 다시 보급을 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국토종주 중에는 항상 충분한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시골에선 카드를 받는 가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험해보니 가능하다면 1000원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편하다.




아침을 먹지 못한 상황이라 끼니를 대충 때우고 당분도 섭취할 수 있는 물건들을 매대에서 집어들었다.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치다보니 어느새 마늘의 고장 의성군에 진입했다.

낙단보는 상주와 의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다른 보와 마찬가지로 낙단보 또한 수력발전소를 겸하고 있다.





낙단보 주변에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그래도 어제 낙단보로 오지 않길 잘했다.

그 조명도 없는 험한 길을 밤에 지나왔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조 가카의 고향인 구미시로 진입했다.

낙단보가 상주, 의성, 구미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나 보다.





낙단보에서 구미보 사이의 구간은 대단히 평이한 길이다.

그런데 그 평이한 길에서 굴렀다.

페달을 밟을 힘이 없어서 발을 헛디뎠는데, 그 순간 균형을 잃은 것이다.

구른 뒤 내 표정이 어떤지 궁금해서 셀카를 찍어봤다.

썩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구미보에 도착했다.




구미보 근처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구미보사업소가 있는데, 그 건물에 편의점이 있다.

그곳에서 늦은 식사를 때우려고 했는데,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가까운 곳에 편의점을 겸한 펜션이 있었다.

살았다!





사실상 오늘의 첫 식사이다.

육개장을 탕국, 캔에 담긴 소시지를 반찬 삼아 끼니를 때웠다.





식사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진통제를 먹었다.

당시 상태는 편의점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편의점에서 식사를 마친 뒤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혼비백산했다.

바로 앞에 뱀이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에서 내린 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이미 죽은 듯했다.

이 녀석 때문에 길에서 한 번 구를 뻔했다.





코스 그 자체로 빡세서 힘들었던 새재 구간과는 달리 낙동강 구간은 고독해서 힘든 구간이었다.

자전거 자체가 거의 지나다니질 않고, 구간이 매우 단조롭다.

오늘 내가 길에서 목격한 자전거의 수는 5대도 안 된다.

목격한 자전거의 탑승자도 모두 동네 사람인 듯했다. 

종주를 하거나 자전거 여행 중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헬맷을 착용하고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극한의 고독을 느껴보고 싶다면 홀로 낙동강 자전거 종주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페달을 밟을 힘이 없어 잠시 누워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짧지만 단잠을 잤다. 황당하게도 내 코 고는 소리에 깼지만 말이다.

덕분에 다시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체력을 조금 회복할 수 있었다.




낙동강의 곳곳은 유명한 철새도래지이다.

그런데 아직 날아든 철새는 보이지 않았다.





여행 내내 맑았는데, 처음으로 비를 맞았다.

강한 비는 아니어서 중단 없이 라이딩을 진행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쳤다.







길을 오가는 수많은 화물차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는 공업도시이다.





구미보에 이은 목적지인 칠곡보가 위치한 칠곡군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칠곡땅을 밟아 봤다.

칠곡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올 줄이야...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있다.

내가 칠곡에 도착하기 전까지, 칠곡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듯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그쳐서 다행이었다. 





낙동강변에선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낙동강은 내게 추억의 강이기도 하다.

오히려 고향의 대표 하천인 금강보다도 낙동강에서 쌓은 추억이 더 많다.

내 외가는 안동이다. 

지금은 모두 대구로 내려와 살고 있지만, 내 어린시절에는 모두 안동에서 살았다.

외가는 안동 병산서원의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가 앞으로 낙동강이 흘렀는데, 상류여서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물이 맑았다.


지금도 그때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을까?

외할아버지 산소는 안동의 옛 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몇 년 전 외삼촌의 유골을 외할아버지 산소에 뿌렸는데, 그때 봤던 낙동강은 어린 시절에 봤던 강과 달랐다.

수량은 줄었는데, 관광지가 형성됐기 때문인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추억을 빼앗긴 기분이다.








강을 타고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하면서 놀란 점은 기온이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이 확실히 높아졌다.

높아진 기온은 식물들로 증명됐다.

낙동강 주변에는 서울에선 이미 한참 전에 진 여름꽃 패랭이꽃, 달맞이꽃이 아직도 많이 피어있었다.

서울에선 이미 사라진 가을꽃인 코스모소와 백일홍도 곳곳에서 보였다.

철없는 꽃들을 다시 보는 일은 즐거웠다.





한참을 달려 칠곡보에 도착했다.

구미보와 칠곡보 사이의 거리는 35km이다.

다른 코스와는 달리, 낙동강 구간에는 인증센터의 위치가 매우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하류 쪽에는 인증센터 구간 사이의 거리가 50km 이상인 곳도 있을 정도이다.

인증센터 주변에 가게와 숙소가 없는 곳도 허다하다.

무작정 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 달려야 하는 이유이다.





왔으니 인증도장부터 찍어야지.




칠곡보에는 낙동강 종주 구간에선 귀한 편의점이 있었다.

보이면 바로 보급을 해야 한다.





고민 끝에 대구 강정고령보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칠곡보에서 강정고령보 사이의 거리는 36km이다. 매우 멀다.

하지만 이 코스를 오늘 소화해야 내일 모레 부산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오늘도 야간 라이딩 당첨 ㅜㅜ





칠곡내 왜관읍은 나름 번화가이다.

종주 코스 중간에 편의점이 보여서 얼른 들렀다.

늦가을에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게 될 줄이야.

당분은 종주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다.





야간 라이딩을 하더라도, 자동차들과 함께 하면 덜 외롭다.

하지만 이런 구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구간은 강을 따라 이어지는데다, 조명도 드물다.




야간 라이딩을 하다보면 먼 곳의 조명조차 그리워진다.

그동안 나는 내가 시골에 맞는 체질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는 도시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귀농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레이디가카의 정치적 고향 대구 달성군에 도착했다.

왠지 모르게 약을 빨은 기분을 느껴야 이 곳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조명 하나 없는 가운데 고라니의 사람 비명 소리 피처링 소리가 들리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드니 말이다.





어둠 속에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최선을 다해 빨리 어둠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강과 강 사이를 잇는 불빛.... 저 불빛은 보의 조명이다.

표지판이 없어도 알 수 있다. 저 불빛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대구 강정고령보의 불빛이다.

다리에서 없던 힘이 솟았다.





크고 아름다운 대구 강정고령보의 위엄.





참 열심히 달렸다.





강정고령보 주변에는 음식점이 많은데, 숙소가 없었다.

이 근처에 자전거 여행객 전용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건데 아뿔싸... 현재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숙소는 여기서 4~5km 떨어진 성서 쪽에 있었다.

이를 악문 채 성서로 향했다. 






예정에도 없던 대구 시내 야간 라이딩이 시작됐다.

이모님께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괜히 조카에게 많은 신경을 쓸 것 같아서 생각을 접었다.





성서공단 근처에 모텔촌이 있었다.

숙소를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구에 왔으니 대구의 술을 마시며 대구 지역 신문을 읽어줘야~

이제 이틀만 더 가면 부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