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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2016.11.16) 국토종주 때문에 나와 세상이 바뀌는 일은 없겠지만...(창녕 창녕함안보~부산 낙동강하구둑)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17.

7년 전 여름에 내가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에 걸어서 도착했을 때, 나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조금 특이하고 빡센 경험을 했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의 본성이 변할 리도 없고, 세상이 내 경험을 알아줄 리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그 도보여행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인내력이 꽤 강하다는 점이었다. 이후 나는 힘겨운 상황이 생기면 "뜨거운 햇살이 사정없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날에도, 장마가 내리는 날에도 하루에 14시간 이상 걸었는데, 그보다는 낫지"라고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견디곤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7년 넘게 흐르니, 그때의 기억도 조금 희미해졌고, 또 그때의 기억만으로 버티기에 어려운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자라는 직업에도 회의가 느껴졌고, 무작정 회사에 사직서를 들이밀지 않고는 견디기가 어려웠었다. 한 번 나를 더 극한상황 속으로 몰아넣으면, 무언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를 시작해 길 위를 달렸다.


7년 전 여름에도 그랬듯이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처럼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아직 내가 국토종주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이번 자전거 국토종주의 수확이다.





아침 식사는 어제 먹다 남은 치킨과 컵라면이었다.

식사 시간을 줄이는 것은 여행 중에 생긴 습관이다.

길에서 다른 라이더과 똑같이 페달을 밟아도 미니벨로는 움직이는 거리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너무 어둡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방법은 일찍 출발하고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점심도 여행 내내 길 위에서 비상식량으로 때웠다.





목적지는 국토종주의 종점 낙동강하구둑이다.

여행 마지막 날의 날씨는 매우 맑았다.

미리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남은 코스의 난이도는 평이한 편이었다.

숙소에서 나온 나는 어제 밤에 미처 닿지 못한 창녕함안보로 향했다.





10km 가량 페달을 밟아 창녕함안보에 닿았다.

자전거 국토종주 중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보가 보일 때였다.

보는 곧 인증센터를 뜻하기 때문이다.





창녕함안보 인증센터에 도착해 종주수첩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두 번만 더 도장을 찍으면 국토종주도 끝이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부산이란 글자와 만났다.

오늘 여행이 마지막 날이란 게 실감이 났다.





창녕함안보 다음 인증센터는 양산물문화관이다.

창녕함안보와 양산물문화관 사이의 거리는 55km로 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 사이의 거리보다 살짝 더 길다.

다만 이 코스는 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 코스와 비교해 난이도가 평이하다.

긴 급경사와 임도에 멧돼지까지 등장했던 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 코스와는 달리 이 코스는 길다는 것 외에는 난이도가 낮다.

그렇다면 가장 큰 적은 지루함이다.

실제로 이 코스는 도대체 언제 끝날지 짐작이 되지 않아 지루한 코스였다.





이런 풍경도 곧 추억이 되겠지.





이 코스도 오르막을 가진 산복도로를 일부 품고 있다.

그러나 날 좋은 날 낮에는 즐길만한 코스였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아래 쪽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기약 없이 긴 코스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무아지경 상태에서 페달을 밟고 있었다.

무작정 페달을 밟다가 창원 표지판도 못보고 지나칠 뻔 했다.





밀먕 표지판도 깜빡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었다.






이날 인터넷 상에선 준면 씨가 내내 화제였다.

'힙합의 민족2'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준면 씨는 '길라임'과 실시간 검색어 정상을 다투며 많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틈나는 대로 준면 씨와 관련된 뉴스를 체크했다.

물론 이 사진은 어설픈 연출 사진이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길이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지겨웠던 순간이었다.






봄꽃인 자주괴불주머니가 햇살이 쏟아지는 곳에 잔뜩 피어나 있었다.

올 봄에 보지 못한 자주괴불주머니를 늦가을에 보게 될 줄이야.






저 보트에 타서 강물 위를 떠 다니면 참 재미있을 텐데...




낙석을 막으려고 시멘트를 떡칠해 놓은 것인가?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삼랑진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레일바이크를 즐기는 이들과 만났다.

넓게 잡으면 이들도 라이더가 아닐까?






"목표가 생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난이도가 높은 코스는 아니다보니 벽에 적힌 낙서에도 부정적인 내용은 없었다.

수많은 낙서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낙서였다.





새들의 V자 편대 비행이 자주 눈에 띄었다.

V자 편대 비행은 매우 과학적이면서 경제적인 비행법이다.

이렇게 비행을 하면 서로의 날갯짓으로 형성된 상승 기류가 홀로 날 때보다 빠르게 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V자 편대비행으로 유명한 새는 기러기이다.

기러기 편대는 매우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조직이다. 

기러기들은 날면서도 늘 서로를 돕는다. 

선두가 지치면 다른 녀석이 그 자리를 직무 대리한다. 

대열 맨 끝의 기러기는 지속적인 울음소리로 선두를 격려한다. 

지쳐서 낙오할 위기에 처한 녀석이 생기면 덜 지친 녀석들이 지친 녀석과 함께 땅으로 내려와 체력 회복을 기다린다.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아는 조직이다.


가끔 새들이 사람보다 낫다.







해다 저물어 갈 때가 돼서야 겨우 양산에 진입했다.

정말 원없이 페달만 굴린 코스였다.

하지만 인증센터가 위치한 물문화관의 위치는 여기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양산구간으로 진입하면 풍경이 조금 더 다채로워져 지루하진 않다.

양산으로 진입하면 경부선 철도와 나란히 자전거를 몰게 된다.

철도를 따라 점점 풍경이 도시를 닮아간다.

국토종주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늘도 야간 라이딩 확정!





진짜 징하게 달렸다.

이제야 인증센터라니 ㅜㅜ





이제 도장을 한 번만 더 찍으면 국토종주도 끝이다.





오늘도 야간 라이딩을 피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대도시인 부산에서 즐기는 야간 라이딩은 지난 며칠간의 야간 라이딩과는 다를테니.






점점 더 많은 불빛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부산이 코앞이란 신호이겠지.





느닷없이 부산으로 진입했다.

아직도 21.5km를 더 가야 낙동강하구둑이 나온다.

그래도 끝이 가까워 온다는 생각에 없던 기운이 솟았다.





반갑다 부산!





이제 10km만 더 가면!!





부산의 자전거 도로는 굉장히 잘 조성돼 있었다.

도로의 포장 상태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주위 도로보다 조금 높은 제방 위에 평평하게 조성돼 있어서 편안하게 페달을 밟으며 주위 풍경을 즐기기에 좋았다. 

특히 봄에 벛꽃이 필 때 자전거를 타면 좋은 것 같다.

길을 따라 조성된 나무들 상당수가 벚나무였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국토종주도 끝이 난다.





낙동강하구둑과 가까워 질수록 자전거의 속도가 더해졌다.

진짜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강을 가로지르는 불빛.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것은 낙동강하구둑 위에 조성된 도로를 비추는 불빛이다.





이제 1km!!





드디어 낙동강하구둑에 도착했다.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기 전까진.





1km만 더 가면 정말로 끝이다.







1주일 내내 닿기 만을 꿈꿨던 장소에 마침내 도착했다.





시간이 늦은 만큼 인증샷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인증도장을 찍은 뒤 셀카를 찍느라 쇼를 벌였다.

여러 차례 실패 끝에 겨우 건진 인증샷이다.







내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면 씨도 부산에 도착했다.

때 마침 준면 씨의 촬영 일정이 빈 상황이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1주일 만에 만나는 와이프의 모습이 정말 반가웠다.






국토종주 중 거친 인증센터는 아라서해갑문, 아라한강갑문, 여의도, 광나루자전거공원, 능내역, 양평군립미술관,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비내섬, 충주탄금대, 수안보, 이화령휴게소, 문경불정역, 상주 상풍교,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고령보, 달성보,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 양산물문화관, 낙동강하구둑 등 25개이다.


국토종주 중 거친 지역은 인천, 김포, 서울, 하남, 남양주, 양평, 여주, 원주, 충주, 문경, 상주, 구미, 칠곡, 달성, 대구, 고령, 창녕, 의령, 함안, 밀양, 김해, 양산, 부산 등이다.


자전거로 느리게 다양한 지역의 땅을 밟고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귀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