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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누아주 [그리고, 겨울]
팝을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은 많다. 그러나 팝에 세련미와 동시에 기품까지 더할 줄 아는 뮤지션은 많지 않다. 그런 뮤지션은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해도 귀 밝은 이들의 레이더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밴드 하비누아주가 지난 2015년 조용히 내놓은 첫 정규앨범 [청춘]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을 수상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하비누아주는 늘 그래왔듯이 요란스럽지 않게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하비누아주는 겨울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13년 1월 [겨울노래]라는 타이틀로 EP를 발표했던 하비누아주는, 3년 만에 다시 [그리고, 겨울]이란 타이틀로 EP를 내놓았다. 하비누아주는 이번 앨범의 첫 트랙에 실린 곡의 제목을 EP [겨울노래]의 타이틀과 같게 지음으로써 다시 한 번 청자에게 겨울과의 인연을 상기시킨다.
이 앨범에는 겨울의 시린 날씨와 따뜻한 방의 온기가 공존한다. 이 앨범을 듣기 전에 명심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다. 이 앨범은 철저히 트랙 순서대로 따라가며 들어야 한다. 떠나간 이를 향한 그리움을 아련하게 짚어나가는 ‘겨울노래’, 절절한 외로움의 정서를 노래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마지막인 것처럼’, 꿈속을 유영하듯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긋난 사랑을 아프게 훑어나가는 ‘잃다’로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은 마음은 ‘청소’에서 빗자루질을 닮은 첼로 소리와 함께 차분하게 정리된 뒤 ‘언제쯤이면’에 이르러 자신을 성찰하는 가사로 작은 위로를 받게 된다. 뽐므의 고혹적이면서도 절제된 목소리에 실린 가사와 멜로디는 여백의 미를 아는 편곡과 정갈한 연주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디지털 싱글이 ‘싱글앨범’으로 불리는 세상에서 이 EP는 앨범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짧지만 잘 보여준다. 겨울 풍경이 문득 황량하게 느껴져 낯설게 느껴지는 날에, 이 앨범은 그 어떤 손난로보다도 따뜻한 온기로 청자를 감싸줄 것이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 봄으로 향하는 길에 함께 할 좋은 앨범이 있다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다.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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