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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삶의 끝' 밀려난 이들의 절망… 조남주 “독자에게 미래를 묻고 싶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5. 29.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신작 '사하맨션'을 출간했다.

전작이 어마어마한 히트작이어서 이번 작품에 관한 기대도 높다.

신작을 일독한 후 들은 생각은 "주제 의식이 지나치게 읽는 재미를 압도하지 않는가"였다.

내 물음에 작가도 "읽는 재미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택의 독자의 몫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3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사하맨션’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82년생 김지영’이 제기한 젠더 이슈에서 범위를 확장해 소외된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 전반에 메스를 들이댄다. 최승도 작가 제공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이후 3년만에 ‘사하맨션’ 출간

부유한 도시국가 ‘타운’ 안에 

국민·체류자 인정못받은 집단

‘사하’로 불리며 열악한 생활 

현실속 실업자들 처지와 유사 

前作 젠더 이슈서 범위 확장 

약자가 겪는 부조리에 ‘메스’


문학의 힘과 가치가 의심받는 세상에서,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이 사회 현상을 넘어 정치로도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 전반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며 담론을 형성했고, 그 사회적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조 작가의 다음 작품을 향한 대중의 관심 또한 지대했다.

조 작가가 2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로운 장편소설 ‘사하맨션’(민음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본격적인 작품 알리기에 나섰다. ‘사하맨션’은 조 작가가 ‘82년생 김지영’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이다. 조 작가는 신작을 통해 ‘82년생 김지영’이 제기한 젠더 이슈에서 범위를 확장해 소외된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 전반에 메스를 들이댄다.

소설의 배경은 한 거대 기업이 파산한 지방자치단체를 인수해 만든 도시국가 ‘타운’과 그 내부에 자리 잡은 낡은 거주지 ‘사하맨션’이다. ‘타운’은 자본·기술·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국민으로 받아들이며,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L2’라고 불리며 2년 기한으로 체류 자격을 인정받아 노동력을 착취당할 뿐이다. 

조 작가는 “내가 속한 공동체인 한국 사회가 뭔가 문제를 잘못 풀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소설은 내가 직접 질문을 적어보고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는지 내 방식대로 풀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타운’의 국민이나 ‘L2’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 이들은 ‘사하’로 불리며 ‘사하맨션’으로 숨어든다. 부유하지만 자유와 언로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타운’과 달리, ‘사하맨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두 공간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소설의 등장 인물은 어머니의 추락사를 자살로 위장한 사장을 죽인 도경과 그 누나 진경,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이 태어난 사라, ‘타운’에서 의료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우미 등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이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소설엔 장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해 개별적인 이야기를 이끌며 이들이 ‘사하맨션’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한다. ‘타운’이 끌어안길 거부한 ‘사하’의 모습은 취업절벽에 매달린 청년, 실패한 영세 자영업자 등 우리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경제 난민’의 모습과 겹친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51페이지)

각 장 위로 최근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러 사건이 포개져 강력한 기시감을 형성한다. 30년 전 ‘사하맨션’으로 흘러들어온 아이 ‘만’의 이야기를 다룬 장에 등장하는 사라진 배는 ‘세월호 사건’, ‘타운’의 무력 진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케 한다. 또한 30년 전 ‘사하맨션’에서 살다가 ‘타운’에서 신종 호흡기 전염병으로 사망한 보육원 직원 ‘은진’을 다룬 장에선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떠오른다. 소설은 변화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패배의식이 내면화돼 미래로 나아가야 할 동력을 잃는 다고 경고한다. 

조 작가는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다”며 “지금 당장 ‘사하맨션’ 입주자들이 패배한 것처럼 보이고,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미래는 바뀔 것이란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 마지막 장에서 진경은 주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타운’의 총리관으로 침입하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진실은 허상이었다. ‘타운’을 다스리는 총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총리실 총비서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만 존재할 뿐이다. 총리실 총비서는 진경에게 주변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사하맨션’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과거 총리관을 침입했던 이들의 선택도 같았다면서. 진경의 선택은 투쟁을 통한 연대의 복원이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은 진경의 선택으로 마침내 하나로 모인다.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368페이지)

‘사하맨션’은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주제의식이 큰 부피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읽는 재미보다 주제의식이 앞선다는 인상이 짙은데, 주제의식의 선명도는 ‘82년생 김지영’보다 옅은 편이다. ‘82년생 김지영’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도 그 영향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절충적인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조 작가는 “나는 읽히는 재미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는 작가”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에서도 나는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