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문학담당 기자를 맡게 된 뒤 대형 작가들의 신작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나로선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동안 소설로만 접했던 정유정 작가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라기보다는 그냥 좋은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일정상 더 긴 이야기를 못 나눈 게 안타까울 정도로 즐거웠다.
보도자료나 일부 기사를 보면 이 소설이 마치 유쾌한 소설처럼 나오는데 글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눈물이 핑 돌을 정도로 가슴이 아렸다.
3년 만에 새 장편소설 ‘진이, 지니’(은행나무)를 출간한 정유정 작가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강건모 - 3년만에 새 장편소설 ‘진이, 지니’ 출간 정유정 생사 자체를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을 맞는 태도는 선택 가능 자유의지로 원하는 삶 찾아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 수 있어 초기작들과 비슷한 성장소설 악의 3부작과 다른 낯선 느낌 “대중의 선입견 깨기 위한 도전” 우리는 늘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가능한 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을 찾는다. 이 같은 선택을 우리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선택은 대개 합리적 선택과 거리가 멀다. 장애 때문에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는 부부, 매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거금을 투척하는 독지가, 어린이 백혈병 환자를 위해 기꺼이 골수를 기증하는 간호사 등의 사례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런 비합리적 선택에 ‘인간답다’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인간답다’는 그런 선택을 결정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 ‘진이, 지니’(은행나무)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에 주목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탐색한다.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수 없지만, 자유의지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할 순 있다”며 “마지막 순간을 후회 없이 맞이하려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작가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희망으로 치환하는지를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가지 축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유인원의 한 종류인 보노보의 몸속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간 유인원 사육사 ‘진이’와 취업에 실패한 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민주’의 선택이다. 진이는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흘 동안 보노보 ‘지니’의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며 과거 자신의 선택이 지니의 평화로운 삶을 빼앗았음을 알게 된다. 진이는 지니의 삶을 되찾아 줄 선택의 갈림길에 서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자신의 생명이다. 민주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10년 전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인을 외면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 민주는 절박한 상황에 빠진 진이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자칫 경찰로부터 쓸데없는 의심을 받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작가는 둘의 선택 과정을 좇으며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죽음이란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웅변한다. 작가는 “진이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아온 치열한 삶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결과를 알면서도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며 “민주가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이유도 결국 진이의 삶과 선택을 긍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는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주변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진이와 민주의 선택을 통해 죽음과 삶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보노보 지니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넘어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매개다. 지니가 느끼는 희로애락은 인간의 감정보다 직설적이고 순수하다. 지니가 이제 막 태어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느꼈던 사랑과 기쁨, 쇼를 위해 춤추기를 강요당하며 느끼는 고통과 슬픔 등은 여과 없이 진이에게 전달돼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진이는 지니를 통해 모든 생명에 저마다의 삶이 존재하고, 그 삶 또한 인간의 삶만큼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 후반에 진이가 지니를 가리키는 주어가 ‘나’로 전환하는 순간은 이 같은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전환은 진이가 지니의 모습으로 연장하는 삶은 자신의 모습으로 맞이하는 죽음보다 무의미하다는 깨달음과 지니를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작가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때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주어의 전환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공감은 관계를 열어놓고 소통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등 작가의 초기작과 비슷한 성장소설의 결을 갖고 있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악(惡)의 3부작’처럼 특유의 치밀한 취재와 속도감 있는 문체는 여전하나, 초기작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겐 기대와 다른 작품일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작가는 처음으로 여성을 화자로 등장시키고, 서사에 판타지적 요소를 더하는 등 전작과 차별화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작가는 “이번 작품은 스릴러 작가로 고정된 대중의 시선을 깨기 위한 도전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특정 수식어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꾼으로 남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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