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이 뜸해진 시대다.
물론 웹소설 중에선 연애소설이 적지 않지만, 문학 쪽에선 좀처럼 연애소설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사는 게 팍팍하다는 신호일 테다.
간만에 읽기 즐거운 연애소설을 만났다.
그래서 엮어서 리뷰 기사를 썼다.
은행서 일하는 네명의 청춘들
사회 양극화에 일그러져가는
사랑의 감정 적나라하게 그려
- 김려령 ‘일주일’
여행지서 만난 중년들의 사랑
결혼 묶인 애정관계 의문제기
사회적 지위의 허상도 꼬집어
좋은 연애소설은 사랑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고 우리의 현실까지 성찰한다. 19세기 영국의 결혼관과 사회상을 풍자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처럼…. 애정 관계는 재산·가족 관계 같은 사회적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극적이어서 통제하기도 예상하기도 어렵다.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풍속도로 연애소설만 한 게 없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상을 알고 싶다면, 요즘 대한민국 연애소설을 펼치면 된다.
◇덜 자란 어른들의 질척이는 연애 = 이혁진 작가의 새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민음사)는 불안한 미래와 상대방을 향한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네 청년들의 연애사를 그린다. 소설의 긴장감을 이끄는 요소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사회 양극화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은행을 소설의 배경으로 둠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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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는 계장, 미경은 대리, 수영은 계약직 텔러, 종현은 청원경찰로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상수는 수영의 미모에 끌리면서도 계약직이란 수영의 불안정한 지위 앞에서 멈칫한다. 수영은 잘생겼으면서도 진중한 매력을 가진 종현을 사랑하지만, 불안정한 종현의 지위를 생각하면 기분이 착잡하다. 재력가의 외동딸인 미경은 함께 일하는 동안 잘 맞았던 상수를 깊이 사랑하게 되지만, 상수는 그런 미경을 사랑하면서도 수영을 향한 미련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과 이해(利害)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은 이들의 관계를 진흙탕처럼 질척이게 만들고 급기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이 작가는 지난 2016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누운 배’로 직장이란 조직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작가는 다시 한 번 직장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양극화가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적나라하게, 조금은 서글프게 보여준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건 아니었다”고 쓰인 띠지의 카피가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다 자란 어른들의 과감한 연애 = 김려령 작가의 새 장편소설 ‘일주일’(창비)은 ‘사랑의 이해’에 등장한 청년들이 세월이 흘러 중년을 맞으면 어떤 사랑을 할지 미리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힌다. 국회의원인 유철, 작가인 도연은 2년 전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뜨거운 일주일을 보냈다. 이들은 유철의 지역구 행사에서 작가와 국회의원으로 또 우연히 마주치면서 만남을 다시 이어간다.
둘은 모두 사랑에 한 번 실패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사랑을 키우지만, 2년 전 이스탄불에서 둘이 함께 보낸 일주일이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유철은 당시 전처 정희와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연과 일주일을 보냈다. 도연은 유철이 당시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철과 애정 없는 부부 관계였던 정희는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비참함을 느낀다. 이에 정희는 언론을 이용해 일주일을 빌미 삼아 유철과 도연을 불륜 관계로 몰아붙인다. 둘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여론은 이로 인해 순식간에 뒤집힌다. 잃을 게 많은 둘은 ‘모 아니면 도’와 다름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작가는 이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며, 제도로 묶인 애정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더불어 작가는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묻는다. ‘사랑의 이해’의 주인공들은 세월이 흘러 사랑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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