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랑 작가의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
읽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들고 웃겨서 키득키득거렸다.
아이돌 팬덤 문화를 자세하게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장편소설이다.
이래서 덕후를 존경한다.
박사랑 장편 ‘우주를 담아줘’
하느님석, 이선좌, 피케팅, 덕통사고, 막콘, 폼림, 멜림, 사녹…. 이 전문용어들의 뜻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아이돌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은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뒤늦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로 특정 연예인의 팬이지만 아닌 척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은어)를 해도 소용없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세상이니 아이돌 ‘덕후’가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덕후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몰라도 괜찮다. 박사랑 작가의 첫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자음과모음)가 훌륭한 가이드가 돼 줄 테니 말이다. ‘빠순이’를 자처하는 작가는 자신의 오랜 ‘덕후’ 경력을 십분 발휘해 아이돌 팬덤 문화를 낱낱이 백과사전처럼 풀어놓는다.
이 소설은 열혈 아이돌 ‘덕후’인 30대 여성 ‘디디’ ‘?’ ‘제나’, 이 셋의 일상과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고3 시절에 아이돌 팬으로 인연을 맺은 셋은 틈나는 대로 ‘현오빠’(현재 사랑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돌려보고 콘서트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온갖 ‘굿즈’(아이돌 관련 상품)를 사 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밥벌이하며 자금력까지 갖춘 이들의 ‘덕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예매에 실패한 콘서트 티켓 구매에 나서는 등 10대 시절보다 더욱 적극적이다. 그러던 중 ‘디디’는 ‘구오빠’(과거에 사랑했던 아이돌)인 일본의 유명 아이돌이 자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극심한 충격을 받는다. 슬픔에 빠진 ‘디디’는 ‘구오빠’의 흔적을 더듬고 추억하기 위해 급하게 휴가를 내고 일본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디디’는 ‘구오빠’를 매개로 새로운 인연을 맺고 추억을 공유하는 기회를 얻는다.
‘덕후’에게 아이돌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다. ‘오빠’는 답답한 현실에서 희망과 용기를 주는 해방구이자,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을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존재다. 또한 ‘덕후’는 ‘오빠’를 아무리 사랑해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 만큼 성숙하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왜 ‘덕후’에게 남자친구 생일보다 ‘오빠’들의 콘서트가 우선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나를 이루는 것 중 어느 조각은 분명 오빠들의 손길이 닿아 있고, 나는 감정의 격랑을 온몸으로 안으며 나와 타인의 삶을 배웠다”며 “소설이란 자각이 없이 오직 즐겁기 위해 썼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과연 ‘덕후’다운 소감이다. 272쪽, 1만3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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