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빗소리에 깨어났다.
일기예보를 살피니 이날 오후까지 울진과 영덕에 비가 내릴 예정이었다.
하루를 숙소에 더 머물까 고민했지만, 다음날 예보를 보니 또 비가 예정돼 있었다.
숙소에서 정오까지 고민하다가 우중 라이딩을 결정했다.
이틀전 길에서 비를 쫄딱 맞은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대로 무장했다.
어울리지 않게 우비도 챙겨 입고.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동해안 자전거길 경북 구간의 첫 인증센터인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드디어 인증수첩의 추록을 쓸 기회가 왔다.
내가 처음 국토종주에 나섰던 2016년 늦가을엔 경북 구간이 조성돼 있지 않아 수첩에 경북 구간 인증란이 없다.
나중에 따로 경북 구간 추록을 받았는데, 그 이후 3년 만에 추록을 꺼냈다.
추록까지 채우는 날이 올 줄이야 ㅠ
문제는 비다.
다시 숙소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휴가철이 지난 비 오는 해수욕장엔 사람 그림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
강원 구간에 비해 경북 구간은 전체적으로 한적하다.
한적하다는 건 식수를 보급할 수 있는 편의점 등 가게를 만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게가 보이는 대로 식수와 간식을 챙겨야 한다.
맑은 날 짙은 파란 색을 자랑하는 바다는 비 오는 날엔 옥색으로 변했다.
옥색 바다도 아름다웠다.
울진 근남면 해안에서 만난 물개바위.
닮긴 정말 닮았다.
영덕과 대게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울진은 거리 곳곳에 대게 모양 조형물을 설치해 뒀다.
경북 구간 두 번째 인증센터가 있는 망양휴게소에 도착.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한 터라 여기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무슨 휴게소 전망이 이렇게 좋아!!
날이 맑으면 훨씬 좋을 곳이다.
이날 아침 겸 점심 메뉴는 치즈 돈가스.
솔직히 맛은 별로 였다.
그래도 이런 풍경을 휴게소에서 볼 수 있다니.
일부러라도 찾아올 만 한 곳이다.
식사를 마친 뒤 두 번째 인증도장을 쾅!
스탬프 상태가 엉망이라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교통수단이 원활치 못할 당시 서울, 대구, 포항, 안동 등 대도시에 해산물을 공급할 때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반출하였으므로 집하지인 지명(영덕)으로 불려 왔을 뿐 실제 대게의 원조는 울진대게이다."
이 문장에서 울진 사람들의 깊은 빡침이 느껴진다.
내가 듣기로도 대게 어획량은 울진이 영덕보다 많다고 들었다.
그리고 영덕 사람이 잡은 대게나 울진 사람이 잡은 대게나 결국 같은 동해 대게 아닌가.
어부의 고향만 다를 뿐.
한 번 뇌리에 박힌 브랜드 네이밍을 바꾸긴 정말 어렵다.
경북 구간 또한 강원 구간처럼 해안도로 아니면
산길이다 ㅜ
지쳐서 끌바를 하다가 만난 작은 개구리.
이 개구리는 여러 차례 실패 끝에 결국 수직 벽에 올라서더라.
저 작은 녀석도 포기하지 않는데, 내가 힘들다고 주저 앉아 쉬면 쪽팔리지 않겠는가.
다시 다리 근육이 터져라 페달을 밟았다.
세 번째 인증센터인 월송정 인증센터에 도착.
월송정은 인증센터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힘들어서 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아 바로 다음 경로로 이동했다.
슬슬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흐르니 덥지 않아 페달을 밟기엔 딱인 날씨가 됐다.
더 힘을 냈다.
정자에 앉아 풍경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 딱일 텐데...
동해안의 물은 서해와 남해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정말 맑다.
울진의 해상낚시공원.
날씨 때문에 강태공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면 할 맛이 나긴 하겠다.
바닥이 투명한 울진 스카이워크.
몸이 힘드니 올라가서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더라.
게다가 입장료까지 받는 터라 바로 포기했다.
경북 구간에서 처음 만난 번화가인 울진 후포항.
예전에 준면 씨와 잠시 들렀던 곳이다.
역시 번화가라 엔제리너스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있더라.
나는 커피전문점에서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했다.
상큼했다.
마침내 영덕 진입!
영덕 고래불해변 인증센터에 도착.
이제 마지막 인증센터인 해맞이공원 밖에 남지 않았지만 각오를 해야 한다.
고래불해변과 해맞이공원 사이 구간은 삼척 한재공원과 임원 사이 구간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고비다.
피서객도 없는데 신나게 가동 중이던 음악 분수.
그래도 아이들 몇이 분수 근처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더라.
귀여웠다.
구간 초반은 평지가 계속 되나 싶더니...
인증센터를 약 10km 남겨두고선 오르막과 내리막이 너덧 차례 반복되더라.
남은 힘을 짜내 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마침내 경북 구간 마지막 인증센터인 해맞이공원 인증센터에 도착!
3박4일 동안 개고생한 끝에 동해안 자전거길 전 구간을 완주하는데 성공했다.
해맞이공원에서 내려다 본 바다.
해가 거의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해맞이공원에서 숙소가 가장 가까운 곳은 12km 떨어진 강구항이다.
강구항까진 평지여서 라이딩이 어렵지 않다.
강구항엔 시외버스터미널도 있어서 어차피 그리로 가야 내일 돌아가는 길도 편해진다.
그리고 완주까지 한 마당에 더 페달을 밟는 게 무슨 대수인가.
오늘 저녁 메뉴는 진즉 대게로 정해놓은 터였다.
대게가 기다리는데 야간 라이딩이 무슨 대수냐!
강구항에 도착해 홀로 즐기는 대게 만찬.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직원이 내게 "왜 이렇게 맛있게 드시냐"고 물을 정도였다.
긴 여정의 끝에 먹는 대게는 꿀맛이었다.
이날 달린 거리는 약 90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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