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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조현병,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9. 27.

조현병 환자에 관해선 안타깝다는 시선보다는 혐오스럽다는 시선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발생한 강력사건 피의자 몇이 조현병 환자였던 탓도 있고, 정신병을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있고.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를 읽어보면 조현병과 환자, 그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환자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과장돼 있으며, 실제로 그들이 보통 사람보다 범죄를 많이 일으킨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오히려 이들의 범죄율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조현병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병이란 사실에 놀랐다.

돌이켜보니 내 주위에도 적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


문화일보 9월 26일자 21면 톱에 리뷰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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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조현병 환자인 아들을 둔 아버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가족의 평범했던 일상과 인류가 오랜 세월 정신질환자를 혐오하고 멸시해온 역사를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혐오와 공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Pixabay 제공


-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퓰리처상 수상한 저널리스트

“미친사람에 아무도 신경안써”

공무원 말에 아들얘기 쓸 결심

창의력 많고 우수했던 두 아들

‘그림자’드리우기 전후 일상과

정신질환자 혐오史 교차 서술

방대한 자료로 인식전환 호소


조현병은 정신 질환 중 하나로 망상·환청·언어 장애·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또한, 조현병 환자는 이유 없이 반복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격한 감정 표현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엔 혐오와 공포가 담겨 있다. 조현병 환자는 정말 위험한 존재인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조현병이 세간의 인식과 달리 환자 본인을 제외한 타인에겐 거의 위험하지 않음을 보여주며,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의 전환을 설득력 있게 호소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저자는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다. 저자는 아들 둘을 뒀는데, 그들 모두 조현병을 앓았다. 그중 작은아들은 21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자택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누구보다 조현병 환자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며 동시에 많은 고통을 경험했다. 또한,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저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의 평범했던 일상을,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류가 정신질환자를 혐오하고 멸시해온 역사를 교차해 서술한다.

먼저 저자는 부모와 두 아들 사이의 평범했던 일상을 절절하게 풀어낸다. 큰아들 ‘딘’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며 풍부한 감수성을 보여줬다. 작은아들 ‘케빈’은 명문 버클리 음대에 진학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음악적 자질이 있었다. 두 아들 모두 풍부한 창의력을 자랑했고 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업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딘’은 고등학교 시절에 교통사고로 여자친구를 크게 다치게 해 지역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으며 고립된다. 남들보다 창의성이 뛰어났던 ‘케빈’은 약물남용으로 조현병을 치료할 시기를 놓친다. ‘케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몇 년이 지난 뒤 ‘딘’이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언하고 다니다가 경찰관에게 제압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인구 4분의 1이 살아가는 동안 정신질환을 경험하고, 100명 중 평균 1명 이상이 조현병을 앓는다.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한 저자의 묘사는 두 아들 모두 조현병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엔 남들과 다르지 않았으며, 동시에 조현병이 누구에게나 찾아와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저널리스트다운 방대한 자료 조사와 검증, 예리한 통찰과 신랄한 비판도 돋보인다. 저자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질환자를 악령에 사로잡힌 모습이나 악령으로 변한 형태로 묘사해왔다고 밝힌다. 이 같은 묘사가 인류의 정신질환자 박해를 유도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정신질환자 수용소 ‘베들럼’이 치료를 명목으로 정신질환자를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학대했는지를 읽다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아울러 저자는 맬서스의 인구론, 다윈의 진화론이 어떻게 우생학으로 이어지고, 우생학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어진 유대인 대량 학살과 정신질환자 제거에 영향을 줬는지 각종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에서도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강제불임 수술이 이뤄졌으며, 심지어 21세기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정신질환자의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이 이뤄졌음을 밝힌다.

원래 저자는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 글로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두 아들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정부 관계자가 악의 없이 내뱉은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저자의 결심을 바꿨다. 저자는 서문 마지막에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상처 입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상처 입어 행동하고 개입하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인류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화하게 만든 핵심 가치가 공감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저자의 말은 “우리도 같이 살 수 있도록 조금만 공감해주면 안 되느냐”는 처절한 울음소리가 아닐까. 600쪽, 2만4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