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사진 자료와 재즈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 순으로 짚은 서술.
재즈를 잘 모르는 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문화일보 9월 26일자 20면 하단에 기사를 실었다.
블루노트:타협하지 않는 음악 / 리처드 하버스 지음, 류희성 옮김 / 태림스코어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익숙한 장음계에서 3번째 음인 ‘미’와 7번째 음인 ‘시’의 반음을 내려보자. 그 순간 멜로디에서 무언가 끈적한 질감이 느껴지며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재즈와 블루스에서 쓰이는 이 독특한 음계를 ‘블루노트’라고 부르는데, 재즈 마니아라면 ‘블루노트’란 말을 듣고 푸른색 타원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블루노트 레코드(이하 블루노트) 레이블을 상징하는 푸른색 타원은 재즈 마니아에게 신뢰의 상징이다. 1939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블루노트는 독일의 ECM 레코드와 더불어 재즈의 역사를 이끌어온 명가다.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아트 블레이키 등 블루노트를 거친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은 레이블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블루노트가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첫 공식 도서인 ‘블루노트 : 타협하지 않는 음악’(태림스코어)은 연대기 순으로 레이블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이 책은 서두에 블루노트의 공동 설립자인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가 나치 독일의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란 사실을 언급한다. ‘자유의 음악’이란 별명을 가진 재즈와 블루노트의 만남은 운명이었던 셈이다. 이어 이 책은 1930년대 부기우기 및 스윙에서 시작해 비밥, 펑크, 퓨전 등으로 이어지는 재즈의 진화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앨범 75개에 관한 리뷰도 곁들여져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단지 레이블의 화려한 역사와 영광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앨범이 끊임없이 나오는 데도 나아지지 않는 레이블의 재정 상태, 라이온의 사임과 울프의 사망에 따른 레이블의 침체, 이후 새롭게 레이블을 이끈 브루스 룬드발에 의한 재도약 등 레이블이 겪은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이 책에 기록돼 있다. 이 책은 이른바 ‘벽돌책’으로 상당한 가격을 자랑한다. 선뜻 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생각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다채로운 사진 자료로 독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음악만큼이나 블루노트에 명성을 가져다준 요소는 앨범 디자인이다. 블루노트는 타이포그래피와 포토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조합한 앨범 디자인으로 재즈계를 넘어 디자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다른 곳에서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앨범 관련 오리지널 사진 자료 약 600컷을 담고 있다. 심지어 가격도 원서(아마존 기준 약 50달러)보다 저렴하다. 책꽂이에 꽂아두기에 이보다 모양새가 나는 책도 드물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블루노트의 간판 피아니스트 로버트 글래스퍼는 “블루노트는 단순한 레이블이 아니라 진실함과 자유를 표현하는 시대의 정신”이라며 “블루노트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탐구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한다”고 찬사를 남겼다. 404쪽, 4만8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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