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선생님은 정갈한 시어만큼이나 결이 고운 분이셨다.
시집을 읽는 일 이상으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즐거웠다.
문화일보 10월 21일자 17면 톱에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신달자 시인이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새로 출간한 시집 ‘간절함’(민음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신달자 시인, 시집 ‘간절함’ 출간
몸 바라보는 시선 통해
불안·아득·심란함 표현
얼굴에 핀 ‘검버섯’ 놓고
“마음이 점 하나에 걸려…”
“쫓기듯 너무 급하게 살아
소중하지 않은 순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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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76) 시인은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자문한다. 내 몸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일이 있느냐고. 오랜 세월 나를 위해 고생한 몸을 사랑해준 일이 있느냐고. 신 시인의 새로운 시집 ‘간절함’(민음사)은 먼 길을 돌아온 끝에 가장 소중한 존재는 자신이었음을 깨달은 자의 고백을 담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 시인은 “지금까지 너무 급하게 쫓기듯 살아왔다. 이제 와 일상을 돌아보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음을 깨달았다”며 “우리가 지금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시간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므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게 시어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 무너지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번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런 시선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시는 ‘불안함’이다. 얼굴에 핀 검버섯을 표현한 “마음이 점 하나에 걸려 넘어지네”라는 시구를 읽을 땐 감탄과 탄식이 함께 터져 나온다. 시인은 “젊었을 땐 열정과 탐욕으로 몸을 이야기했는데, 나이가 들어서야 몸을 바탕으로 내가 버티고 살아올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처지가 돼서야 비로소 내 몸에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시집의 제목을 ‘간절함’이라고 지은 이유도 몸에서 나왔다. 신 시인은 “시집의 마지막 교정을 병실에 한 달 동안 누워서 봤는데 그때 느낀 감정이 간절함이었다”며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고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득함’ ‘심란함’ ‘무심함’ ‘짜릿함’ ‘싸늘함’ ‘적막함’ ‘막막함’…. 신 시인은 다양한 감정을 제목으로 내세워 시어를 펼쳐낸다. 신 시인이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는 자연이다. ‘심란함’을 표현한 “벼랑 끝 저릿한 날바람”, ‘무심함’을 표현한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매는 밤”처럼 자연을 거쳐 다가온 시어는 이미지로 형상화돼 마음에 새겨진다.
신 시인은 “예전에는 괴로움을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인 말로 가리려고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시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감정을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시어로 담아 여운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부분은 파격이다.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장시 ‘한강이 나에게 이르노니’는 자연을 대상이 아닌 화자로 내세운다. 일반적으로 해설이 실리는 자리를 대신한 ‘나를 바라보는 힘’이란 산문도 눈길을 끈다. 신 시인은 “관성적으로 평론가의 해설을 싣는 대신 시인의 이야기를 실으면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파격의 의도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신 시인은 의견이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현상이 잦아지는 현재의 세태를 우려했다. 신 시인은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제안했다.
“미안하다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해결될 일이 세상에 정말 많은데, 그 말을 하지 못해 사태가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운 시대를 헤쳐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아름다운 말”이라고 당부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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