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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초엽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12. 28.



나는 문학기자 시절에 김초엽 작가를 취재로 만난 일이 있다.
당시 나는 김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기사로 다루면서, 소설에 '심장을 가진 SF'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온전히 내가 만든 수식어라고는 볼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의 음악을 가리키는 수식어 '심장을 가진 기계음악'에서 따온 표현이니 말이다.

나는 묘하게 따스한 느낌을 주는 캐스커의 일렉트로닉 뮤직과 김 작가의 소설에서 비슷한 질감을 느꼈다.
소설을 읽은 뒤 캐스커의 음악과 함께 불쑥 '심장을 가진 SF'라는 수식어가 떠올라 그 수식어를 기사에 담았던 기억이 난다.
김 작가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또한 '심장을 가진 SF'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주인공은 대멸종 이후 겨우 재건된 생태계를 연구하면서, 생태계 재건에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수수께끼 식물의 기원을 추적한다.
소설은 잘못된 과학 실험에서 비롯된 더스트라는 미세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벌어진 대멸종 시대, 그 시대에 벌어진 살아남기 위한 아귀다툼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 대부분이 사망했고, 그중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이 간신히 살아남아 재앙의 종식을 선언한다.

그들의 후손으로서 일종의 원죄 의식을 가진 주인공은 온실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희망을 나누던 대안 공동체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살아남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생존을 자축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생태계 재건의 시작이 주변부로 밀려나 대안 공동체에 모여 연대하며 서로를 보듬어주던 약자들이었음을 밝혀나간다.
소설 속 상황이 묘하게도 최근 코로나 펜데믹 상황과 겹친다.

우리는 이미 소설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걸 목도했다.
올해 초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던 대구를 향해 얼마나 많은 혐오 발언이 쏟아졌던가.
코로나 완치 후 직장과 사회에서 바이러스 취급을 받으며 차별을 받았다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일상이 무너질수록 관대함보다 배제와 혐오의 정서가 넘쳐난다는 걸 우리는 똑똑히 봤다.
코로나 펜데믹을 넘어 소설과 비슷한 대멸종이 다가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소설보다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소설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얼굴은 우리가 아는 얼굴과 다르게 보여 종종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얼굴은 우리가 아는 얼굴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얼굴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봐야 우리의 진짜 얼굴을 알 수 있다.
약자를 배척하는 사회가 강자에게도 좋을 리가 없다.
살아남은 강자 사이에서도 상대적인 약자는 주변부로 밀려날 테고, 그런 사태는 모두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따뜻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