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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완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 2.

 



올해 들어 처음 완독한 책이다.
새해 벽두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아 보일 테다.
하지만 내게 연초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2년 전 장인어른이 새해 벽두에 돌아가셨고, 14년 전 어머니가 봄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연초에는 내가 차를 폐차하는 큰 교통사고를 겪으며 겨우 죽음을 면했다. 
유쾌하게 읽을 주제는 아니어서, 지난해 이 책이 화제가 됐을 때는 굳이 찾아 읽지 않다가 이제야 읽게 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책의 저자는 특수청소업체 대표다.
오물이나 쓰레기로 뒤덮인 공간을 치우는 특수청소업체를 불러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예사로운 일일 리가 없다.
저자가 자주 만나는 공간은 누군가가 죽은 공간,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시신이 발견된 공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죽음은 대체로 안쓰럽고 처연하며 참담하다.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줄을 놓기 전에 깨끗하게 방을 치우고 재활용 쓰레기까지 분류해 버렸고, 누군가는 전기와 가스까지 끊길 정도로 곤궁한 처지 속에서 홀로 죽음을 택하거나 혹은 함께 죽었다. 서랍에는 먹다 남은 약봉지가 수북하고, 우편함에는 수많은 세금 독촉장과 미납 고지서가 꽂혀 있다. 대개 가난하고 외롭게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바깥으로 새 나오는 시취다.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런 죽음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런 죽음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전한다. 저자의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망자의 흔적은, 그들의 삶이 처음부터 우리와 다르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게 일상임을 실감했다.

에세이를 읽으며 문장이 좋다는 느낌을 받은 일이 많지 않은데, 이 에세이는 달랐다. 
냄새와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생생하게 묘사한 문장이 놀라웠다.
저자의 약력을 살피니 시를 전공한 문학도 출신이다.
문학도 출신 특수청소업체 대표라...
저자의 삶도 만만치 않았겠구나.
이렇게 땅에 발을 깊숙하게 디딘 사람들은 어떤 문학 세계를 보여줄까.
문득 저자가 나중에 혹시라도 쓰게 될 시나 소설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