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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정명섭 외 4인 공저 앤솔로지 '모두가 사라질 때'(요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 9.



최근 들어 자주 읽은 책은 앤솔로지다.
나는 데뷔한 지 올해로 10년째(그 사이에 아무 창작도 안 한 7년이란 기간이 있지만)이고, 장편소설을 4편 출간했지만, 안면이 있거나 교류하는 작가가 거의 없다.
전공도 문학과 무관한 법학이다 보니 주위에 소설을 쓰는 사람도 없었다.
동인 활동을 했을 리가 없고, 서로의 글을 읽어줄 문우 또한 없었다.
그냥 혼자 쓰고, 혼자 책을 출간하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의 공동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내심 많이 궁금했다.

앤솔로지에 실린 작품은 작가가 혼자만의 이름으로 내놓는 단행본보다 확실히 가볍다.
정명섭 작가가 쓴 표제작 '모두가 사라질 때'는 슬래셔 무비 뺨치는 복수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멸망할 날이 오면 소설보다 훨씬 잔인한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며칠 전에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이 떠올랐다.
조영주 작가의 '멸망하는 세계, 망설이는 여자'를 읽으며 세계의 끝을 아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봤다. 세계의 끝이 다가온다면, 아마 나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겠지.
마지막에 실린 김동식 작가의 '에필로그'에선 피식했다. 함께 한 작가들을 디스하는 단편이라니 ㅋ 김 작가의 단행본에 접한 촌철살인이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어쩌면 이게 진짜 종말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앤솔로지는 작가가 부담 없이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낼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누가 정의한 일은 없지만, 나는 나를 장편 작가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너도 한 번 이런 앤솔로지 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한다면 뿌리치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내심 내가 단편을 어떤 형태로 쓸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단편을 쓴 게 여기저기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에 매달리던 12년 전이다.
당시 쓴 단편 중 2편을 작년 봄에 계간 시인수첩과 대만 월간 INK 2월호에 각각 발표했고, 아주 부끄럽지는 않은 단편 하나가 아직 남아있다.
역사 혹은 SF 혹은 사랑을 주제로 기획한 앤솔로지에 넣으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