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목욕탕, 독특하게도 여탕이다.
여탕에서 때밀이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딸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여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과 일상을 관찰함으로써 주변부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화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한때 잘 나갔던 주인공의 어머니는 남자를 잘못 만나 다단계로 모든 걸 날리고 빚쟁이가 된 뒤 동네 목욕탕으로 숨어들어 때밀이로 재기를 도모한다.
주인공은 어머니까 때를 밀어 번 돈으로 명문대에 진학해 무용을 전공했지만, 몸이 뻣뻣해 큰 역할을 맡을 수 없고, 본인도 그 한계를 잘 안다.
어머니에게 주인공은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대리 만족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리 밉진 않다.
인생에 바닥뿐만 아니라 지하실도 몇 층이나 있음을 경험한 그녀다.
좀처럼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녀가 마음을 붙들 수 있는 곳은 어린 딸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여탕은 서로 알몸으로 만나는 공간이니까, 그 공간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할 거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여탕에서도 재산, 직업, 피부, 자식 자랑 등으로 여자들의 서열과 계급이 나뉜다.
때밀이인 주인공의 어머니는 여탕 내 피라미드 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만만한 존재다.
그녀가 아무리 악착같이 돈을 벌어 괜찮은 아파트를 장만하고 딸을 명문대에 보냈어도, 그녀의 처지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여자는 없다.
하지만, 여탕은 알몸을 보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아무리 자신을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공간에선, 결국 삶의 핍진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는 매력적인 여탕 단골이 몇몇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단골은 동네에서 돈 많다고 소문이 자자한 오 회장이라는 인물이다,
오 회장이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한쪽 가슴을 잃은 후에도 당당하게 목욕탕에 드나든다.
그 후 이 여탕에는 유방암 환자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자궁암 등 다른 질병을 앓았던 여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여탕에서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며 보듬고, 언젠가부터 그들은 여탕에서 주변인이 아니게 된다.
서로 적당히 떨어져 지내던 여자들이 느슨하게 연대하는 모습이 감동을 줬다.
나이가 들면 깨닫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인생이 결코 내 마음대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산다고 해서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 것도 알게 된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의 파도를 받아들일 줄 아는 방법을 배운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몸이 뻣뻣해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주변부로 밀려난 인물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몸에서 힘을 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에 짓눌려 지나치게 긴장하며 살아온 게 아닌지 묻는다.
그리고 말한다.
일단 몸에서 힘을 빼라고 말이다.
아직 가야 할 인생길이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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