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전작 <돌이킬 수 있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느꼈던 애절함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먹먹하게 남아있다.
작가의 후속작인 이 작품을 진즉 읽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펼쳐 들었다.
지난해에는 새 장편소설 두 편을 쓰느라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비파'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이고, 이 인공지능이 화자로 등장한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해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인공지능보다는 실제 인간에 더 가깝게 묘사된다.
'해마'가 어떤 기술로 만들어져 어떻게 작동하는 인공지능인지 명확하게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많아 전작보다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SF 장르의 매력이 그런 점이 아닌가 생각하며,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작가가 설정한 공간을 떠올렸다.
나는 작가의 전작을 SF보다는 처절한 로맨스로 읽었다.
이 작품도 전작 못지않게 로맨스로 읽힐 여지가 많다.
그렇지만 내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성찰한 끝에 관용과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비파'의 모습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비파'가 자신의 백업 인공지능을 '나'에서 '너'로 부르는 순간이었다.
'비파'는 자신이 파악한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백업 인공지능을 보조적인 존재로 취급하며 '나'라고 부른다.
백업 인공지능 또한 오기를 부리듯 '비파'를 백업이라고 부르며 무시한다.
하지만 둘은 각자 다른 경험을 한 끝에 서로 같은 결론에 다다랐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비파'가 각성한 끝에 백업 인공지능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고, 백업 인공지능은 '비파'의 임무를 떠맡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둘의 관계가 '비파'와 '은하'의 관계보다 더 애절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이 쉬운 소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도 이 작품의 큰 줄기만 파악했을 뿐, 세부적인 부분에선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그런 미래가 다가온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인공지능과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
<유령해마>는 다가올 미래를 고민해보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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