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영감을 어디에서 얻느냐?"이다.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가진 지인뿐만 아니라 언론사와 인터뷰할 때도 이런 질문이 빠지는 일이 없다.
그 질문에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나는 쓰고 싶은 소설의 주제를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생각하며 정리한 뒤 짧은 기간에 글로 쏟아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 과정에 딱히 영감이란 게 내게 영향을 미친 일은 없었다.
내겐 소설 쓰기가 정신노동보다는 육체노동에 가깝게 느껴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의 영감을 얻는지 무척 궁금한 사람이다.
나도 영감이란 걸 받아서 소설을 쓰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쳤다.
작가가 최근에 쓴 장편소설 <손의 왕관>(은행나무)을 읽었을 때 왠지 모를 영성(?)을 느낀 터라, 왠지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한번 읽는다고 없던 영감이 샘처럼 솟아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 책의 머리말에 "영감에 대한 일방통행적인 기술이나 정해진 해답을 원하는 독자라면, 부탁드리건대 이 책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이 책은 소설을 쓸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헤매는 사람들에게 꽤 훌륭한 길잡이가 돼주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란 결국 사고 실험이니 말이다.
이 책은 수동적으로 내용을 따라가야 하는 책이 아니다.
자주 페이지에 머물러 생각해야 하고, 순서대로 페이지를 넘길 필요도 없다.
때로는 무언가를 책에 적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해야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공책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여백이 많다
언어 감각을 익히기 위해 끝말잇기를 제안하고, 모르는 단어를 접하면 사전을 뒤지기에 앞서 먼저 상상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작가의 소설을 비롯해 중앙지와 지역지를 망라한 다양한 신춘문예 당선 단편소설, 국내외 유명작가의 소설이 사례로 등장해 이해를 돕는다.
영감으로 글을 쓰는 요령을 가르치기보다는, 영감을 키우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하는 책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은 책이다.
아껴 읽는 책이 아니라, 막 읽어서 제본이 뜯어져야 하는 책이다.
처음에는 전체를 통독하고, 필요할 때마다 목차를 보며 발췌독하면 활용도가 높은 책이다.
작가는 영감 훈련은 사유의 훈련이므로 자기 내부에서 길어올린 글을 쓰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영감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몰라서 재미있는 표현이나 흥미로운 사건을 찾아 헤매니 글의 원천을 외부에 두게 되며, 자신이 창의적이지 않음을 아니까 빠르게 지치고 쓰는 기쁨을 잃어가게 된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곱씹을수록 옳은 말이다.
자신이 소설을 쓸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스스로 질문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래. 세상에 뭐든 거저 얻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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