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송경화 장편소설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한겨레출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3. 21.

 

티를 내지는 않아도 기자들은 서로를 매우 궁금하게 여긴다.
기자가 현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람은 타사 기자다.
타사 기자는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논조가 다른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서로 반목할 것 같지만, 사실 논조는 기자들의 친소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사 소속 기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이 고생하는데 동료 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직 기자가 썼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는 소설.
1년 전에 취재 현장을 떠났지만, 매우 호기심을 일으키는 소설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지난 행보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소설이 더 궁금했다.
새 장편소설 원고를 다듬고, 한국언론진흥재단 스토리텔링 강의 준비 때문에 바빴던 터라 2월 말부터 신간을 한 권도 찾아 읽지 못했다.
일을 마무리하면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터였는데, 감사하게도 작가와 연락이 닿아 소설을 선물로 받았다.
힘들게 쓴 작품을 꽁으로 받을 수는 없어서 나도 <젠가>를 작가에게 답례로 보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사두고 못 읽은 신간 한국 소설이 10권 이상 쌓였는데, 일을 마무리하자마자 다른 신간을 뒤로하고 이 소설부터 펼쳤다.

이 소설은 내가 지금까지 접한 한국 기자를 다룬 작품 중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에피소드에 담긴 취재 현장과 과정을 따라 읽으며 마치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에피소드 대부분이 실제 기사화된 사건을 바탕에 두고 있어서 생생함을 더했다.
기대했던 대로 가독성도 매우 훌륭했다.
담백한 문장과 절묘하게 맞물린 팩트의 힘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를 더한다.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읽으면서 자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온기 속에서 사람과 사건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선이 엿보인다.
그 때문에 에피소드마다 여운이 짙었다.
특히 여운이 깊었던 건 북한 여공을 다룬 에피소드였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는데, 스포일러는 안 하겠다.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궁금하면 책을 사서 읽어보자.

작가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한겨레의 조직 문화를 간접적으로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며 지역지, 경제지, 종합지를 모두 경험했다.
조간에서도 일했고, 석간에서도 일했으며, 편집에서도 일했고, 취재에서도 일했다. 
이는 딱히 전문성을 쌓지는 못했다는 말과 동의어다.
이것저것 다 살짝 맛만 본 터라 썰을 푸는 능력만 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직 문화가 서로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어느 조직이든 돌아가는 꼴은 서로 비슷했다.
소설은 조금 정제된 이야기를 담고 있겠지만, 한겨레는 꽤 괜찮은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글은 어떤 식으로든 쓴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직접 만난 일은 없지만, 글을 통해 만난 작가는 기자로서도 자연인으로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끊임없이 자기 일의 옳고 그름을 고민하고, 사람에 실망하면서도 사람을 향한 믿음을 끝내 버리지 않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기는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을 읽은 시간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