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마주하면 기분이 복잡해지는 이름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감성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신경숙 작가가 이문열, 김훈 작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탁월한 문장을 쓰는 소설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절 앞에서 변명하던 작가의 모습도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말 같지도 않은 논리로 작가를 옹호하느라 바빴던 문단의 실망스러운 모습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도 신경숙의 신작 장편소설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출간되자마자 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에 쥔 책은 3쇄 본이었다.
여전히 신경숙의 신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테다.
작가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인 <엄마를 부탁해>를 작가의 최고작으로 꼽는 독자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많이 울었다.
공교롭게도 작품이 출간된 해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였던 터라.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외딴방>이나 <깊은 슬픔>보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안타깝지만 <엄마를 부탁해>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란 게 내 의견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엄마를 부탁해>와 비교해 많은 부분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엄마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약간 수정해 가져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은 여전했지만, 곳곳에서 기시감이 많이 느껴졌다.
문장 곳곳에서 감정에 큰 진폭을 일으켰던 <엄마를 부탁해>와 비교해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잔잔한 편이다.
게다가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이어서 집중해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올드한 느낌도 아쉬운 점이다.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컸던 만큼,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복귀하는 게 안전하다고 여긴 걸까.
조금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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