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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신경숙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창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3. 24.

 


신경숙. 마주하면 기분이 복잡해지는 이름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감성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신경숙 작가가 이문열, 김훈 작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탁월한 문장을 쓰는 소설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절 앞에서 변명하던 작가의 모습도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말 같지도 않은 논리로 작가를 옹호하느라 바빴던 문단의 실망스러운 모습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도 신경숙의 신작 장편소설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출간되자마자 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에 쥔 책은 3쇄 본이었다.
여전히 신경숙의 신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테다.

작가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인 <엄마를 부탁해>를 작가의 최고작으로 꼽는 독자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많이 울었다.
공교롭게도 작품이 출간된 해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였던 터라.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외딴방>이나 <깊은 슬픔>보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안타깝지만 <엄마를 부탁해>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란 게 내 의견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엄마를 부탁해>와 비교해 많은 부분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엄마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약간 수정해 가져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은 여전했지만, 곳곳에서 기시감이 많이 느껴졌다.
문장 곳곳에서 감정에 큰 진폭을 일으켰던 <엄마를 부탁해>와 비교해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잔잔한 편이다.
게다가 분량도 적지 않은 편이어서 집중해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올드한 느낌도 아쉬운 점이다.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컸던 만큼,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복귀하는 게 안전하다고 여긴 걸까.
조금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