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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독자에게 닿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8. 16.

 

내가 오늘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겪은 웃픈 일이다.

시간은 약 오후 3시, 장소는 서점 내 한국소설 신간 평대 앞. 
한 아주머니가 새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집어 들어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나는 서점에서 내 책을 손에 들고 살피는 사람을 생전 처음 봤다.
흥분한 나는 평대 주변을 손님인 척 맴돌며 그녀를 살폈다.
그녀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책장을 넘겼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녀를 멀리서 주시했다.

10분, 20분, 30분...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페이지를 넘기며 책 읽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래 책을 살폈다면, 책을 사지 않을까?
서점에서 내 책을 사는 독자를 직접 목격하는 날이 드디어 왔구나!!
고무된 나는 계산을 마친 그녀에게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책에 저자 친필 사인을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책을 읽은 지 약 34분가량 됐을 때 조용히 책을 평대 위에 내려놓았다.
설마... 설마! 설마!!!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내 입에서 안타까움이 섞인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가방을 열어 사인펜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손님이 내 눈에 띄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손에 있다가 평대로 돌아온 내 책이 슬퍼 보였다.
아... 무명 작가의 책이 독자의 손에 닿아 계산대로 옮겨지는 과정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로구나.
오늘 그 냉엄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봤다.
어제 과음해 숙취가 가시지 않았는데, 또 술 생각이 났다.
언젠가는 이 순간에 관한 기억도 좋은 안줏거리나 글감이 되겠지?
돌아가서 새 소설 퇴고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