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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두 번째 자전거길 국토종주 짧은 후기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9. 20.

 

1. 경험이 늘었다고 힘이 덜 드는 건 아니다.
내가 또 전국의 모든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섭렵한 그랜드슬래머 아닌가.
그 때문에 5년 전에 했던 국토종주보다 조금은 수월할 줄 알았다.
막상 달려보니 그런 거 전혀 없다.
힘든 건 그냥 힘든 거다.

2. 요령은 늘었다.
지난 몇 년간 전국 곳곳을 돌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야간 라이딩을 피하는 방법, 숙소 잡는 방법, 보급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다.
덕분에 5년 전 매일 야간 라이딩을 하며 6박 7일 만에 마친 국토종주를, 이번에는 야간 라이딩을 거의 안 하고 5박 6일 만에 끝냈다.

3. 체력은 줄었다.
5년 전에는 오르막길을 깡으로 밀어붙여 올랐는데, 이젠 그렇게 힘을 주니 다리가 풀리더라.
힘에 부쳐 중간에 쉬는 일이 예전보다 확실히 잦았다.
5년 후에 또 이 짓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4. 생각보다 자전거길이 더 아름다웠다.
5년 전에는 숙소를 찾아 헤매느라 야간 라이딩을 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야간 라이딩을 거의 하지 않아 5년 전보다 훨씬 많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낙동강자전거길을 정말 볼 게 없는 코스라고 여겨왔는데 오해였다.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를 고스란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코스였다.

5. 앞날을 안다는 게 꼭 좋지만은 않다.
오르막길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아니까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때가 많았다.
오르막길 다음에 내리막길이라는 걸 알아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차라리 몰랐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 테다.
인생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김국환의 히트곡 '타타타'에 이런 가사가 있지 않은가.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6. 시간은 기억을 미화한다.
내가 다시 국토종주에 나선 이유는 첫 번째 국토종주에 관한 기억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채색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분명히 죽을 만큼 힘이 들었는데 말이다.
국토종주는 차차기에 쓸 장편소설에 중요한 소재인데, 미화된 기억으로 글을 쓰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페달을 밟으니 오랫동안 잊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살아났다.
우리는 기억을 미화하는 시간의 힘 덕분에 결국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그대로 평생 간직할 수밖에 없다면, 맨정신으로 사는 게 어려울 테니 말이다.

7. 이번 국토종주가 집필에 크게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페달을 밟는 내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 길이 도대체 언제 끝나나"였다.
첫 번째 국토종주 때도 그랬다.
몸이 힘들면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설 집필을 위한 구상에는 걷기가 훨씬 도움이 된다.
다만 국토종주를 하는 동안 몸으로 느낀 점은 소설에 현장성을 더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