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속초에서 한 달 동안 머물고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펼친 책이다.
박상영 작가는 데뷔 때부터 민감하면서도 무거운 소재인 퀴어 서사를 유쾌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주목을 받아왔다.
나는 2년 전 문화일보 신춘문예 업무를 맡았을 때 퀴어 서사를 다룬 많은 응모작을 접수하며 작가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그만큼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향한 기대감이 컸다
작가의 전작이 많은 독자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성소수자의 사랑 속에서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끌어내는 과정이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도 그런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대단히 재미있다.
작가가 묘사하는 2000년대 초반의 학창시절은 내 경험한 90년대 중후반의 학창시절과 상당히 비슷해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사랑에는 진심인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읽는 내내 절절하게 다가왔다.
10대들의 사랑을 묘사하지만, 어지간한 성인 로맨스 뺨을 칠 정도로 감정의 깊이가 상당하다.
이 작품이 주된 배경인 2000년대 초반의 대중문화 묘사도 실감 나서 작품에 생생함을 더한다.
여기에 작품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스릴러의 요소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드니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몸이 달았다.
분량이 요즘 장편답지 않게 상당한 편인데도(원고지 1300매) 페이지가 쑥쑥 넘어갔다.
이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손에 틀어쥐고 흔들다니.
놀라웠다.
이 작품이 작가의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을 넘어선 작품이라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작가가 퀴어 서사라는 다소 한정적인 소재만 다룰 줄 아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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