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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문열 엮음 <세계명작산책>(무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9. 30.

 

최근에 나는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라도 단편소설을 써서 여기저기 들이밀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인정하기 싫고 짜증이 나지만 한국 문학계라는 바닥은 단편을 써서 발표하는 일을 무시하면 투명인간이 되는 구조다.
마침 문예지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단편소설 청탁이 들어와 제도권 문인 흉내를 낼 기회가 왔다.
문제는 내가 단편을 쓰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다는 점이다.

10월 1일에 차차기에 내놓을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끼적이려 속초로 떠난다.
속초로 떠나기 전에 그동안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미친 듯이 읽어대고 정리했는데 모두 소화하기는 어려웠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을 책을 고민하다가 이 시리즈를 선택했다.
이 시리즈가 오랜만에 단편을 끼적이는데 좋은 교재가 될 것 같았다.

이 시리즈는 25년 전에 출간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전면 개정판이다.
다양한 주제별로 세계 각국의 단편을 정리한 게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대단히 유명한 시리즈인데도 소설을 쓴다는 놈이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터라 부끄러웠다.

전면 개정판은 현재 총 10권 중 1권 <사랑의 여러 빛깔>, 2권 <사내들만의 미학>, 7권 <죽음의 미학> 등 3권이 시중에 출간돼 있다.
고전이 왜 고전이고, 명작이 왜 명작인지 알게 해주는 작품의 연속이었다.
하나같이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었다.
나는 과연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품 뒤에 실린 해설을 읽을 때는 따로 개인 교습을 받는 듯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는 작품도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모르는 작품이 훨씬 많았다.
안다고 생각한 작품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게 태반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정말 독서를 게을리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이유로 책을 주마간산하고 7권에는 손을 대지도 못했다.
11월에 돌아오면 다시 펼쳐 정독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