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산 소설집인데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소설집에는 단편 11편이 실려 있는데, 대여섯 편은 이미 문예지나 앤솔로지 등을 통해 접한 작품이었다.
읽지 않은 작품은 정독하고 읽은 작품은 통독한 덕분에, 읽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가 자꾸 다른 책에 손을 대는 패턴을 끊을 수 있었다.
작가는 가족이나 주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은 이들의 일상과 심리를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다.
작품 속에 죽음, 질병, 상실 등 온갖 비극적인 상황이 넘쳐나는데 희한하게도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경쾌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특별하지 않은 사건이 특별하게 보이고, 특별한 사건을 특별하지 않게 보인다.
서사 전개에 큰 굴곡이 없고 문장이 화려하지 않은데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떤 모양의 재미인지 비유하자면, 마치 '인간극장'을 여러 편을 한꺼번에 시청한 기분이랄까.
어떤 분야에 있든 고수들의 공통점은 힘을 뺄 줄 안다는 점이다.
읽을 때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몰랐는데, 책을 덮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강호의 절정 고수를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집을 읽고 힘을 빼고 글을 쓰는 게 어떤 경지인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한 방 세게 먹었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선란 장편소설 <나인>(창비) (0) | 2021.11.25 |
---|---|
김태용 장편소설 <러브 노이즈>(민음사) (0) | 2021.11.23 |
박상영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 (0) | 2021.11.06 |
이문열 엮음 <세계명작산책>(무블) (0) | 2021.09.30 |
테드 창 소설집 <숨>(엘리) (0) | 202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