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천선란 장편소설 <나인>(창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1. 25.

 

 

분량이 상당하지만 쑥쑥 읽히는 페이지터너여서 분량을 느끼기 어려웠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은 풍경이 눈앞에 그려져 즐거웠다.

들꽃 덕후인 내게 작품 전면에 등장하는 식물 묘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식물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은 나도 자주 해봤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한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전공인 SF이기도 하고, 스릴러이기도 하고, 학원물이기도 하며, 성장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작인 <천개의 파랑>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세상의 부조리를 들여다봤는데, 이 작품에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핵심 내용이어서 스포하지 않겠다)로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작가는 청소년인 여러 등장인물의 눈으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으며 진실을 은폐하는데 급급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꼬집는 강도가 전작보다 강하고 내용이 현실과 밀착해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사회파 소설을 닮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특히 사람을 거주지로 등급을 나눠 다르게 대하고,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어른의 태도가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모습은 익숙한 모습인데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작가의 서사 전개가 설득력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몰아붙이는 서사 전개가 압권이었다.

 

선한 의지를 따르고, 세상을 지키는 건 서로가 서로를 향한 믿음이라고 믿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다른 게 틀린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부조리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며, 끝까지 약자의 편에 서는 아이들 앞에서 "세상은 원래 그래"라며 이런저런 일을 적당히 뭉개고 넘어갔던 내 모습이 떠올라 뜨끔해졌다.

아마 이 작품을 읽고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독자도 많으리라고 본다.

작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 준 작품은 <천개의 파랑>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