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최양선 장편소설 <세대주 오영선>(사계절)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2. 6.

 


읽는 내내 내가 주인공이 된 듯 숨이 막혔다.
반지하부터 창 없는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 홀로 부동산 이곳저곳을 돌며 전세를 알아보던 시절, 전세 보증금 반환을 놓고 집주인과 싸웠던 사건, 하자를 놓고 부동산 중개인과 시비를 벌였던 일 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인 부동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후반 여성을 중심으로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준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 열심히 일하며 저축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부모의 말을 믿은 청년 세대가 겪는 답답한 현실을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부동산 문제를 이렇게 실감 나게 다룬 소설은 처음이다.

주인공의 소망은 대단한 게 아니다. 안정된 직장에서 때 되면 월급을 받고 싶고,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지내고 싶고, 친구들과 만날 때 지갑을 여는 일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끔 맛있는 외식을 하고 싶다. 그게 전부다.
이 작품은 그 작은 소망이 어떻게 현실에서 배반당하는지 핍진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지는 갭투자, 주택청약, 가점 계산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용어와 구체적인 현금의 흐름 묘사가 작품에 현실감을 더한다. 
부자가 부를 대물림하는 방식을 죄악처럼 다루지 않은 것도 이 작품의 미덕이다.
자식들에게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보다 돈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가르쳐 주는 게 더 현명한 부모 아닌가.

사실 이 문제는 작가들이 진즉 다뤘어야 했는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의 면면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서수 작가의 단편 <미조의 시대>를 제외하면 현실에 제대로 조응한 소설이 얼마나 있었나?
치열하게 생활전선에서 밥벌이해 본 사람들이 작가로 많이 진입해야 할 이유다.
나도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미뤄뒀던 문제인데, 이 작품을 읽고 내년에 발표할 단편에 바로 다뤄야겠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