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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강진아 장편소설 <미러볼 아래서>(민음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2. 4.



작품 속 주인공은 답답한 인물이다.
문제가 생기면 침묵하고 회피하는 성격인 데다, 누군가와 처음으로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거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성격과 습관은 오해를 부르고 주인공을 외톨이로 만든다.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내보이지 못하는 주인공이 오로지 진실하게 대할 수 있는 대상은 키우는 고양이뿐이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사라졌다.

주인공이 사라진 고양이를 찾으며 좌충우돌하며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상처만 입은 줄 알았던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오해로 얼룩졌던 인간관계를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비록 소중한 존재를 잃었지만,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과거와 다른 긍정적인 사람으로 조금 성장한다.
책장을 덮을 때 잔잔한 장편 독립영화 한 편을 감상한 기분을 느꼈다.

최근 들어 신간을 읽으며 느끼는 문학계의 변화 중 하나는 영화계 출신 작가의 증가다.
영화계 출신 작가가 없지는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명관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있었고, 꾸준히 활발하게 작품을 내놓으며 베스트작가 반열에 오른 김호연 작가도 있다.
<아몬드>로 영어덜트의 지평을 연 손원평 작가, 지난해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정대건 작가는 연출자 출신이다.
정지돈 작가나 서이제 작가처럼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작가도 보인다.
이 작품을 쓴 강진아 작가도 단편과 장편 영화 다수를 연출한 영화계 출신이다.

나는 영화계 출신 작가가 늘어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 일단 영화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투자를 받기가 어렵고, 어렵게 투자를 받아도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화 하나에 매달리다가 10년 세월이 금방 흘러가고, 지나간 세월을 누가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시간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연출자들은 대부분 각본 집필을 겸하는 이야기꾼들이다.
시나리오는 각색하면 충분히 소설이 될 수도 있다.
각색은 영화 촬영처럼 큰돈이 들어가는 작업도 아니다.

영화계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은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작가의 소설과 결이 다르다.
읽으면 쉽게 영상이 눈앞에 그려지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보다 이들 작가의 큰 장점은 대체로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쓴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작품보다는 작품 이외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나는 영화계 출신이든 누구든 다른 분야 출신 작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소한 알아먹을 소설을 쓰니 말이다.
종종 작가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알고 쓰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을 접할 때면 한숨이 나온다.
작품 마지막에 평론을 더하는 자들은 과연 그 작품에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소설을 쓴다는 작가 중에서 나보다 많이 신간을 챙겨 읽는 작가는 드물 거라고 본다.
신간을 챙겨 읽으면 읽을수록 한국문학이 지금 이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만 늘어나고 있다.
점점 게토화되고 있다는 기분이 나만의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