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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최유안 장편소설 <백 오피스>(민음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3. 25.



직장을 배경으로 다룬 밀도 높은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구성 때문에 마치 스릴러 드라마 한 시즌을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행사 기획, 호텔,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장인 셋의 시점으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직장은 단순히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돈을 버는 공간이 아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마주치는 동료 직원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온전히 익숙해질 수 없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직장의 속성을 잘 보여주면서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해 현장감을 높인다.

특히 이 작품은 호텔에서 고객을 대면하는 프런트 오피스 뒤에서 마케팅, 객실 예약, 행사 개최 등을 담당하는 백 오피스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 공간을 주요 배경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이는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조명하는 구성이 기존 직장 소설과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에 조직의 이익과 구성원의 이익, 서로 다른 조직 사이의 이익,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의 생생한 묘사는 범죄물이 아닌데도 긴장감이 넘친다.

매우 흡인력 있고 흥미로운 장편소설이었다.
내가 거쳐온 직장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으로는 조직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해졌다.
조직에 충성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잘 사는 게 중요하지.
직장에서 삐끗해도, 다른 길로 걸어도, 안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