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는 이제 취향을 떠나 의무감으로 작품을 읽어야 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나 역시 의무감으로 신작이 나오면 사는데, 이상하게 손은 가지 않는 작가였다.
<소년이 온다> 외에는, 읽은 뒤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만 머리에 남는 기분이 들어서랄까.
이 작품도 작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제야 펼쳤다.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 읽으면 아름답다.
묘사도 생생해서 냄새와 온도가 느껴진다
그 문장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한 장 한 장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 풍경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보니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읽기 힘들었다.
그리고 작가 또한 쓰기 정말 힘들어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이 온다>와 달리 이 작품으로는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평론가든 누군가는 여기서 뭔가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겠지만, 내겐 그럴 능력이 없다.
나는 2년 전 퇴사 후 내가 굳이 매달려야 이어질 인연을 대부분 끊어냈다.
끊어내도 딱히 불편하진 않은 데다, 살아남기 위해 할 일도 많은데 그런 인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말이다.
내가 문학 담당 기자로 기자 커리어를 마치기 전, 노벨문학상 관련 기사를 쓸 때 많이 참조했던 사이트가 영국의 도박 사이트 레드브록스다.
발표 직전에 한강 작가도 도박 사이트에 이름이(말석이긴 하지만) 오르는 걸 보고 나중에 뭔가 일이 일어나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신작을 더 기다렸다.
아무래도 한강 작가는 나와 이어질 인연은 아닌가 보다.
여기까지가 내가 매달리는 노력의 마지막이다.
어쩌다 보니 작품 제목과 반대가 됐네.
하지만 문장 하나는 건졌다.
이 문장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요약한다고 생각한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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