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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장강명 장편소설 <재수사>(은행나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9. 6.

 



이 작품은 장기미제로 남은 20여 년 전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제목만 보고 긴장감 넘치는 수사물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정적이며 치밀한 작품이다.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 과정을 이보다 현실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한 소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한 취재가 돋보인다.
그런데도 가독성이 매우 훌륭해 읽는 데 막힘이 없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작가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표백> 이상으로 도발적이다.
분량만 보고 지레 겁낼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학부 시절에 형법을 공부할 때 나를 사로잡았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과연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국가는 형벌을 주는 권한을 독점한다.
이를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김승연 한화 회장처럼 아들이 밖에서 맞고 들어왔다고 직접 빠따를 들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원칙 때문에 피해자가 형사사법시스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해자가 지나치게 낮은 형벌을 받아 홧병으로 뒷목을 잡는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가.
오래전에 홀로 며칠 동안 이 문제를 가장 공정하게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었는데, 고민 끝에 나온 해결방안은 어이없게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데, 함무라비 법전에 명시된 이 원칙은 미개함과 거리가 멀다.
상대방이 내 강냉이를 세 개 털었으면, 나도 상대방의 강냉이를 딱 세 개만 털어야 한다는 게 이 원칙의 핵심이다.
즉 피해를 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선 안 된다는 대단히 합리적인 원칙이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이 원칙은 범죄 행위의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지 않는다.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지 않고 이런 복수법을 허용하면 어마어마한 사회적 혼란이 벌어진다.
실제로 고려 초에 복수법이 시행돼 막장 사태가 벌어진 일이 있다.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원한을 가진 상대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게 됐고, 백주대낮에 누군가를 때려죽여도 복수라고 주장하면 땡이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의범에겐 국가가 대신 나서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른 형벌을 대신 가하는 게 공평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과연 물리적인 피해만이 피해일까?
누군가에게는 맞아서 입은 상처보다 마음에 입은 상처가 훨씬 클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정신적인 피해는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떻게 처벌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이뤄질 수 있을까?
오래전에 멈췄던 고민을 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하게 됐다.

이 작품은 분량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출판시장을 향한 도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장편소설의 기준이 원고지 1000매에서 800매로 내려온 지 오래고, 요즘에는 400~500매에 불과한 소설도 장편소설 취급을 받는다.
나도 의도적으로 800매에서 장편소설 분량을 끊어온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원고지 3000매 이상 분량의 소설이라니 이게 도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에 소설을 읽으며 이 정도로 깊게 무언가를 들여다본 일이 있었던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사이고, 그런 서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장편이다.
단편으로 아무리 문장이니 뭐니 장난을 치고, 단편을 억지로 장편으로 늘려 봐야 이런 사고실험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소설은 역시 장편이고, 취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앉은뱅이 소설로는 어림없다.
그걸 다시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