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최하나 장편소설 <강남에 집을 샀어>(몽실북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9. 7.


사법시험, 행정고시, 7급 공무원 시험, 9급 공무원 시험에 차례로 10년 넘게 매달리다가 30대 중반을 넘겨버린 남자.
뒤늦게 간신히 취업한 직장의 월급 수준은 최저임금이고, 주5일은커녕 주말 근무에 고용주의 사적인 지시까지 받들어야 한다.
번듯하게 사는 동창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걸 만회하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
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갭투자를 시도하지만, 등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근생을 구입해 낭패를 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생각에 급기야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임대사업에 뛰어든다.
단시간에 강남에 무려 200채 이상의 빌라를 보유한 임대사업자로 변신하며 신분 상승이라도 한 듯한 기분을 느끼지만, 수많은 빌라의 보증금이 폭탄으로 돌아온다.
결론은? 파국이다.

제목만 보고 장류진 작가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류의 투자 성공담을 기대했다면 페이지를 덮자.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폭풍처럼 펼쳐지니 말이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 속에는 그 어떤 꿈도 희망도 없다.
그래서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소름이 돋았다.
나 또한 20대 말에는 주인공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는 말은 못 하겠다.
대신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좌절이 완성도를 압도한다.

나는 점점 하락 중인 노동소득의 가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좀 먹는 가장 큰 병폐라고 생각한다.
청년층의 가상화폐 투자 열풍도 결국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내 몸 하나 쉴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허구헌날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꼭 한 번 들여다봐야 할 작품이다.
지난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 하나만으로도 청년세대에게 죽을죄를 지었다는 게 내 의견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그 문제를 해결할만한 역량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총체적 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