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학 출판 담당기자였을 때 신간으로 가장 많이 접한 책은 산문집이었다.
동시에 보자마자 거른 책 또한 산문집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책을 만드는 데 쓰인 나무가 가엾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책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진입장벽이 낮다지만, 어떻게 이따위로 책을 내놓나 싶었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산문집이란 걸 준비하다 보니 시장에서 잘 팔리는 산문집은 어떤 것인지 신경이 쓰인다.
서점에 들를 일이 있으면 산문집 코너에서 잘 팔리는 산문집을 살폈고, 종이책과 전자책을 가리지 않고 꽤 많은 산문집을 읽었다.
특히 '밀리의 서재'는 종이책을 샀다가 실패할 확률을 확 줄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산문집은 이 작품이었다.
우선 이 작품의 BGM으로 무키무키만만수의 '투쟁과 다이어트'를 깔고 싶다.
이 산문집과 딱이다.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고, 밥벌이는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늘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때문에 밤마다 폭식하고, 폭식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니 입맛이 좋아져 배가 고파지고, 하지만 밥벌이는 해야 하고,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고.
작가는 이 같은 악순환과 고민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필터 없이 보여준다.
그 어디에서도 허세가 보이지 않고, 진솔한 자조가 "나도 그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내가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유머인데, 이 작품 역시 페이지 곳곳에서 유머가 넘쳐난다.
재미로만 따지면 최근에 읽은 모든 책 중에서 최고였다.
유머 감각은 타고나는 걸까?
내가 아무리 잘 써도 이 작품만큼 재미있는 산문집을 내진 못할 것 같다.
잘 팔리는 작가에겐 팔리는 이유가 있다.
이 양반 좀 짜증 나게 질투 나네.
에라이 살이나 더 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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