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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현석 장편소설 <덕다이브>(창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9. 10.



이 작품은 발리의 한인 서핑 캠프를 배경으로 병원 내 괴롭힘인 '태움'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섬세한 필치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우선 '덕다이브'라는 단어가 낯설어 의미를 웹서핑으로 찾아봤다.
'덕다이브'는 오리가 잠수하듯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 타기 어려운 거대한 파도를 피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작품을 읽다 보니 소설의 주제와 내용을 훌륭하게 압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차 서프 강사인 태경과 캠프에 수강생으로 찾아온 인플루언서 민다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경은 과거에 한 건강검진센터에서 업무 보조 인력으로 일했고, 민다는 당시 태경과 함께 일했던 간호사였다.
실수가 잦았던 민다는 선배 간호사로부터 태움을 당했고, 태경을 포함한 다른 직원은 태움을 방관하거나 동조하며 민다를 외면했다.
민다의 등장은 태경이 잊고 살았던 과거를 소환하며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방관 또한 가해와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기 때문에 민다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불편했던 거라고.

최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7~2021) 산업재해로 인정된 자살 건수는 473건에 달한다.
한 해 평균 100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사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집계는 늘 현실보다 적게 이뤄지므로, 알려지지 않은 자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이 같은 자살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이런 말을 한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는데, 왜 버티다가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나 같으면 직장을 다 뒤집어 버리고 그만두겠다고.

그런데 참 웃기다.
나도 11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월급쟁이로 일했는데, 영화나 드라마처럼 폼나게 사표를 던지며 다니던 직장에 엿 먹이는 사람을 본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더러워도 참았고, 억지로 쫓아내기 전까지는 버텼다.
이유는 여럿이다.
퇴사 후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까.
월급이 끊기면 일상이 멈추니까.
제 손으로 밥벌이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취급받으니까.
퇴사 후 다가올 현실이 죽음보다 두려운 거다.
그래서 다들 참고 버틴다.
돌이켜 보니 나도 죽을 뻔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퇴사를 결심하지 않았을 테다.

조금만 용기를 내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면, 대한민국 조직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도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까.
태경이 높은 파도를 흘려보내고 위기에 빠진 민다를 향해 다가가려고 결심하는 모습을 그린 마지막 부분의 여운이 깊었다.
파도 위에서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하며 일어서고, 거대한 파도를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덕다이브'로 돌파하는 서퍼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게 바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장편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