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중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진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리해 해결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언뜻 보기엔 주요 등장인물이 여자 중학생이고 배경이 학교여서 성장소설처럼 보이는데, 시종일관 차분하게 사건을 풀어가는 진지한 추리물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게감이 상당하다.
억지로 감동을 주려는 요소도 없고, 등장인물의 선악 구도도 확실치 않다.
복잡한 트릭도 없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무리한 설정이 없다.
배경을 학교 바깥으로 옮기고 등장인물의 연령대를 높이면 색깔이 완전히 달라질 작품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심리가 어른과 다르지 않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많은 어른이 아이들의 고민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 고민의 무게가 과연 현재 고민의 무게보다 가벼웠던가.
나도 그 시절에 죽을 만큼 괴로운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른이 10대 여자 중학생에 빙의해 그들의 행동과 심리를 흉내 냈다는 느낌보다, 10대 여자 중학생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감정의 진폭을 좁힌 냉정한 연출이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는 나도 꼰대가 됐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개표방송을 보며 나는 두 가지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이제 나보다 어린 당선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무심코 어린놈이 뭘 안다고 정치를 하느냐고 혀를 찼다는 점이다.
아는 예의라고는 장유유서밖에 없는 꼰대를 실컷 비웃어왔는데, 나도 그런 꼰대로 변하고 있었다니.
내 나이 때 이미 4선 국회의원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늘에도 혀를 찰 일이다.
이 작품은 나이와 상관없이 고민은 누구에게나 무겁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작가가 할 말이 더 있는데 이야기를 끝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회수되지 않은 떡밥이 몇 개 있고, 결말 역시 제대로 매듭을 짓지 않았다.
후속편을 의도한 걸까.
그런 거라면 부디 이른 시일 내에 후속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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