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박상영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9. 11.



이 작품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네 편의 소설이 연작으로 실려 있다.
그중 두 편은 이미 문예지(악스트, 릿터)를 통해 읽은 터라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30대 직장인이다.
성적 지향이 동성일 뿐,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는 샐러리맨들이다.
20대를 다룬 <대도시의 사랑법>, 10대를 다룬 <1차원이 되고 싶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탄탄한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사랑의 방법이 과거와 비교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지점이 갈등의 시발점이다.
의식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지위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다.
남들과 다른 성적 지향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의식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흔들리니 말이다.
몸은 함께 있지만 외부 조건 때문에 마음까지 온전히 함께일 수 없는 이들의 외로움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불어 이 작품은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코로나 확진보다 동선 공개를 훨씬 두려워하고, 부동산 거래나 대출도 어려우며, 집들이조차 망설여야 한다.
견고해 보였던 삶의 토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등장인물보다 잃을 게 많아진 만큼 어깨에 짊어진 부담도 크다.
코로나 펜데믹이 등장인물의 일상을 뒤흔드는 모습을 문장으로 읽을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작가는 대한민국 문학계의 주류인 퀴어 문학의 대표 주자이지만, 나는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퀴어 서사라는 걸 그리 의식해보지 못했다.
작가의 퀴어 서사가 다른 퀴어 서사와 비교해 유니크한 점은 일상성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묘사하는 연애는 이성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퀴어 서사라는 사실만 잊고 읽으면 이보다 절절한 로맨스가 없다.
그 일상성이 퀴어 서사를 문학계 주류로 이끈 힘이 됐고, 이를 가장 소설로 잘 풀어내는 작가가 박상영이다.

나는 작가의 소설이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
작가가 중년과 노년의 퀴어 서사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