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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인애 장편소설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9. 13.



이 작품은 8년 동안 다닌 대기업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퇴직금으로 스터디 카페를 차린 자영업자가 보낸 1년 남짓의 시간을 따라간다.
철저한 준비 없이 뛰어든 자영업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얻어 개업하기만 하면 돈을 벌 줄 알았는데 오산이다.
자유업종, 비자유업종, 권리금, 관리비, 부가가치세, 관리비, 계약 전력량 등 체크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에서 매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덜컥 계약부터 했다가 낭패를 보고, 급하게 개업을 준비하다가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제대로 눈탱이를 맞는다.

퇴직금으로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겨우 스터디 카페를 개업하지만,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폭풍우가 밀려온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자 정부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고, 정부의 조치에 따라 스터디 카페의 매출이 널뛰기를 거듭한다.
같은 건물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던 사장이 자살하고, 고깃집 사장은 현실을 비관해 과음하다가 병원으로 실려 간다.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드나드는 주인공은 의사의 권유로 같은 동네 자영업자 인터뷰를 시작한다.

작품 속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자영업자의 현실은 대단히 심각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예사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월세 부담은 계속되므로, 영업을 마음대로 중단하기가 어렵다.
배달 매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배달 대행비, 배달앱 수수료, 포장 용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 순수익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온갖 구실을 내세워 수시로 이런저런 비용을 자영업자에게 전가한다.
치킨 가격이 2만 원을 넘어가기 시작한 이유를 이 작품을 통해 알았다.
아무리 음식을 잘 만들어도 배달앱에 노출되지 않으면 망한다.
신용 등급이 낮은 자영업자만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받기 위해 일부러 신용등급을 내리는 웃픈 방법을 공유한다.
임대인이 임차인과 똑같은 업종으로 같은 건물에 개업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자영업자와 소비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이상한 구조를 지적하며 어디로 돈이 흘러가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 읽기의 가치가 간접적으로 다른 삶을 경험해보는 데 있다면, 이 장편소설은 그 가치에 올인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고, 마지막에는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듯 멘붕하며 손을 떨었다.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고, 이런 게 바로 현실공포구나 싶었다.

나는 퇴사 후 반은 진심으로 나를 자영업자라고 소개해왔다.
소설이라는 아이템으로 출간, 영상 판권 판매, 각색 등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자영업자가 아니면 무엇이냐는 논리로.
이제 그런 식의 소개는 하지 말아야겠다
지금까지 내 밥그릇이 아니란 이유로 내가 자영업에 관해 너무 쉽게 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