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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염기원 장편소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문학세계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4. 27.



제목 하나만 보고 펀딩까지 참여했던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전작인 <구디 얀다르크>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구디 얀다르크>는 한국 문학에서 보기 힘든 디테일을 가진 노동소설이어서 정독했던 작품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작가가 두문불출하며 장편소설을 여덟 편이나 썼고, 이 작품이 그 첫 작품이라는 소개에 경악했다.
나는 퇴사 후 3년 동안 장편 세 편을 쓰는 일만으로도 완전히 진이 빠졌는데 세상에...

이 작품은 태백과 서울을 배경으로 오빠를 찾아 헤매는 여동생의 행보를 그린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투포환선수로 활동하다가 기록에 매달리며 살 수밖에 없는 신세가 싫어 공장에 취직한 노동자다.
아버지는 무책임한 가장의 표본이었고, 어머니는 엉망인 가정을 홀로 건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책만 읽으며 허송세월하던 오빠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태백에서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유명 유튜버 변신해 여동생의 레이더에 잡힌다.
여동생은 오빠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사기꾼이 됐다고 여기고, 오빠를 구하기 위해(라기 보다는 더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잡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빠의 정체를 파고들면 들수록 사기꾼 같지 않다.
오빠 주변의 인물들은 그를 사기꾼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과연 오빠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꼭두각시일까, 현자일까, 정말 대단한 사기꾼일까?
더 이상의 스포는 생략한다.

제목만 보면 사고뭉치인 오빠를 잡으러 떠나는 여동생의 활극인데, 내 예상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
오빠를 만나면 바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것 같이 구는 여동생은, 사실 오빠를 잃을까 봐 누구보다 걱정하는 가족이다.
지식으로 사기를 치는 세태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지만, 실은 신파를 뺀 가족 이야기다.
제목이 준 강렬함 때문에 호쾌한 이야기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기대보다 심심하게 끝나 조금 아쉬웠다.

p.s. 사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은 내용이 아니라 디자인과 편집이다.
주요 문학출판사가 아닌 출판사가 만든 소설 단행본에선 미묘한 가벼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단행본을 낸 문학세계사를 비롯해 문학사상, 실천문학 등이 그런 출판사다.
주요 문학출판사보다 규모가 작고 디자인과 편집을 맡은 내부인력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과 편집만으로도 단행본의 퀄리티가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모르는 걸까? 알면 외주를 활용하는 게 더 나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