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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임제훈 장편소설 <1그램의 무게>(북레시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6. 19.

 



이보다 하이퍼 리얼리즘 장편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의 주제는 마약(그중에서도 필로폰)이고, 작가는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마약을 밀수하고 SNS로 판매하다가 검거돼 4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까지 저자와 같다.

이 작품은 그동안 막연하게 알려졌던 마약의 위험성을 진짜 '업자'의 시각으로 잘 보여준다.
작가는 캄보디아에서 마약 밀수 혐의로 체포된 순간부터 한국으로 송환돼 감옥 살이를 하는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시간순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풀어내기에 느껴지는 현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마약 유통이 어떻게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았다.
더 무서운 사실은 마약 사범이 고등학생, 가정주부, 취준생 등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란 점이다.
마약을 국내로 밀수해 포장하고 유통하는 과정, 배달하는 수법, 마케팅 방법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를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살았다고 한탄했다.

주인공인 처음에 그저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감옥에서 실제 마약 중독자들을 만나며 자신이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 일조했음을 깨닫고 자기 혐오에 휩싸인다.
이 작품이 묘사하는 마약 중독자의 모습을 보며 기가 차서 자주 한숨을 쉬었다.
작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바닥으로 보였던 현실 아래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지하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욕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면 공포스럽다.

마약에 관한 다른 의견을 담은 책으로 오후 작가가 쓴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동아시아)가 있다.
이 책은 세계 각국의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마약을 법으로 금지했을 때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크다고 논쟁적인 주장을 한다.
우리가 마약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편견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소설과 비교해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