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문학상은 김초엽, 천선란 등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며 SF를 넘어 기존 문단에서도 주목하는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SF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시공간 위에 현재가 겹쳤을 때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비감 때문이다.
수상자의 첫 단행본을 읽는 일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을 살피는 일임과 동시에 이 사회의 문제점을 다른 필터로 살피는 일이기도 할 테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의 주제는 대부분 불안정한 일자리다.
일러스트레이터가 AI에 밀려 다른 진로를 찾고('페가수스의 차례'), 해녀가 바다 대신 우주에서 숨비소리를 내며('루나'), 자율주행 AI 때문에 보험 업계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는다('마음에 날개 따윈 없어서').
작가는 토크쇼 '아침마당', 가상화폐, 밴드 넬(NELL), 청계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적극 끌어와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넓힌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은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섬칫하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지 꽤 됐다.
저 멀리 동해안의 물횟집이나 제주도의 해장국집에서도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로봇이 음식을 테이블로 나르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MZ세대 젊은 작가가 바라보는 미래는 마냥 어둡진 않다.
작가는 결국 사람은 결국 사람을 믿어야 불안정한 세계를 무사히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막막한 우주에서 자신의 명줄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명줄을 풀고 그 우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루나').
재미있게 읽었다.
P.S. 작가의 말을 읽다가 단편 '유전자 가위 시대의 부모 되기'에 영감을 준 영화가 <삼거리 극장>이라는 언급을 봤다. 준면 씨가 출연한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을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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